포스트휴먼 (담론으로 만들어진 존재)
김휘택 | 경진출판
14,400원 | 20250520 | 9791193985762
인공지능, 생명공학, 디지털 기술 등이인간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다
≪포스트휴먼: 담론으로 만들어진 존재≫는 인공지능, 생명공학, 뇌과학, 디지털 기술 등의 급진적인 발전이 인간 존재와 인간성의 정의에 초래하는 변화와 이 변화를 선도하는 담론을 사유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담론적으로 구성되고 문화적으로 형성된 상징적 인간상이자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즉, 포스트휴먼은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새로운 인간이라기보다, 우리가 지금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지, 어떤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욕망하는지를 드러내는 사회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책은 크게 네 개의 문제의식에 따라 구성된다.
첫째, 인간과 기술의 관계 재정립이다. 저자는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인지, 심지어 존재론적 조건을 확장하는 동반자로 간주하며, 과학기술이 인간 진화의 외적 엔진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유전자 조작 기술은 단순한 효율성 증대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진 존재’로 다시 사고하게 만든다.
둘째, ‘조작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저자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하며, 생물학적 신체와 기계가 결합한 신체 이미지가 어떻게 사회적 담론으로 유포되고 규범화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 문화콘텐츠에 나타난 포스트휴먼의 형상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이 이미 대중적 감각 속에 각인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셋째, ‘상정된 인간’ 개념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욕망이 사회적 제도와 언어, 문화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도나 해러웨이, 보드리야르, 바뱅 등의 이론을 적극 인용하며, 몸, 자아, 의식, 욕망 등이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담론적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넷째, 저자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능 비교 담론’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교차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 판단, 창의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재정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술 담론은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를 넘어 인간성에 관한 인식론적 기반을 뒤흔든다고 진단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기술 담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하면서도, 인간의 능력과 감각을 초월하려는 상상력 자체를 억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포스트휴먼이라는 존재가 실체라기보다 ‘상정된 인간상’이고, 이 상정이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담론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이라는 분석적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다.
≪포스트휴먼≫은 인문학, 기술철학, 담론이론, 과학문화연구, 문화콘텐츠 분석 등 다양한 학제 간 관심을 아우르며, 오늘날 인간이라는 개념이 처한 해체와 재구성의 국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지금-여기의 인간이 더 이상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면, 포스트휴먼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고, 어떤 윤리적・문화적 장치를 통해 공존 가능한가? 이 책은 그 질문을 향해 치열하고도 유연하게 응답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