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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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7월 11일,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가톨릭을 신봉하는 중산층 집안에서 어났다. 1907년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해 뮌헨 대학을 거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1년부터 1928 년까지 그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 일련의 논쟁적 저작들, 『독재』(1921), 『정치 신학』(1922), 『정치적인 것의 개념』(1927), 『헌법 이론』(1928) 등을 잇달아 발표해 학계와 논단의 스타로 부상했으며, 이 시기(1925년)에 초창기 저작 『정치적 낭만주의』(1919)를 새로운 서문과 함께 재출간했다. 본 대학과 쾰른 대학을 거쳐 1933년 마침내 베를린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동시에 프로이센 추밀 고문관으로도 임명되어 나치 정권과의 밀월 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 나치 체제의 어용학자로 위용을 떨치지만, 1936년 무렵부터 ‘나치의 이념에 충실하지 않다’는 동료 법학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권력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후 비교적 조용한 삶을 보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소련군과 미군에 체포된다. 일 년여의 영어 생활 후 석방된 그는 1947년부터 고향 에 칩거하며 세상을 뜰 때까지 고립된 생활을 영위한다. 예순을 넘긴 시점부터 한층 더 왕성한 서신 교환 및 집필 활동을 펼치면서 향후 그를 위대한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 줄 강력한 저작들을 남긴다. 이 시기의 대표 저서로 『대지의 노모스』(1950), 『햄릿이냐 헤쿠바냐』(1956), 『파르티잔 이론』(1963), 『정치신학 2』 (1970) 등을 꼽을 수 있다. 슈미트는 노쇠할 때까지 명망 있는 유럽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방문을 받았는데, 이들 중에는 에른스트 윙거, 라인하르트 코젤렉, 알렉상드르 코제브, 야콥 타우베스 등이 있다. 1985년 4월 7일 사망했으며 유해는 플레텐베르크에 안치되었다. 슈미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그는 노모스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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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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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법대학장,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초청교수, 미국 버클리대학 방문학자, 한국공법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며 동아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역자는 근대 한국 헌법의 발전을 수용사와 개념사라는 시각에서 천착하여 한국 법학의 연속성과 정체성의 확립에 주력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 공법이론의 주요 문헌, 특히 카를 슈미트의 저작 대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우리 헌법의 정신적 및 이론적 토대를 공고히 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2018년 제8회 대한민국 법률대상(학술부문)과 목촌법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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