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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2013 빈 필하모닉 여름밤 음악회

[수입] 2013 빈 필하모닉 여름밤 음악회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마젤 (Lorin Maazel) (아티스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샤데 (Michael Schade) (연주)
소니뮤직(DVD)
2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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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2013 빈 필하모닉 여름밤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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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수입] 2013 빈 필하모닉 여름밤 음악회 
· 분류 : DVD/블루레이 > 음악DVD > 클래식 > 교향곡/관현악
· ISBN : 888837121392
· 출판일 : 2013-07-17

책 소개

거장 로린 마젤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빈필하모닉이 함께 펼친 2013년 5월 30일 실황

저자소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 (아티스트)    정보 더보기
요한 슈트라우스(1825-1899)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보통 아버지를 "왈츠의 아버지" 라 했고 아들을 "왈츠의 왕" 이라 부른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빈 왈츠의 기초를 닦아 아들에게 그것을 계승시켰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계승받아 그것을 최고도로 발전시키게 된다. 어머니에게 몰래 음악을 배운 그는 뛰어난 음악적 천품을 통해 19세 때 이미 관현악단의 지휘자로서 활약하고 있었다.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악단을 인수하여 유럽 각지를 순방하여 그는 명성을 높였다. 30세 때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 있는 페토로포로프스키 공원의 하기 연주회 지휘자로 10년간 계약을 맺기도 했다. 38세 때는 오스트리아의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서, 45세 이후에는 오페레타를 작곡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500여곡의 왈츠곡을 비롯하여 [박쥐], [집시 남작] 등 16개나 되는 오페레타가 있다. 간소한 관현악법으로 작품을 썼는데 극히 효과적으로 처리하였고, 경쾌하고도 친밀감이 있도록 하여 대중의 오락성에 맞도록 했다. 극히 청신하고 건강한 감각을 왈츠에 담아 왈츠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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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의 다른 책 >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아티스트)    정보 더보기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음악극’을 창시한 라이프치히 출신의 작곡가. 극작가이자 배우인 양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7세에 피아노를, 15세에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8세인 1831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여러 도시에서 합창단 지휘자, 오페라단 음악감독 등을 맡았으나, 큰 빚을 지고 외국으로 도피한다. 1836년에 배우 빌헬미네 플라너와 결혼했다. 1839년부터 3년 동안 파리에 머물며 생계를 위해 음악 관련 글을 쓰고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를 편곡하며 오페라 〈리엔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완성한다. 1842년 드레스덴으로 이주, 이듬해에 작센 궁정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된다.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하고, 1846년 당시 이해하기 힘든 작품으로 여겨지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1849년 드레스덴 혁명 가담 혐의로 지명 수배를 받아 취리히로 피신, 12년간 망명 생활을 한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4부작 〈니벨룽의 반지〉 구상을 시작하고 정치와 예술에 관한 글을 왕성하게 집필한다. 1854년 그의 음악 이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처음 접한다. 1861년 추방 조치 해제로 프로이센 비브리히에 정착할 무렵, 그를 열렬히 숭배하던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1864년 뮌헨으로 불러들여 신작 공연을 돕는다. 하지만 적대자들의 배척으로 이듬해에 스위스 트리프셴으로 이주한다. 이 무렵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프란츠 리스트의 딸)와 사랑에 빠져 여러 해 동안 혼외 관계가 이어지다 1870년에 결혼한다. 이후 〈니벨룽의 반지〉 작곡에 온 힘을 쏟고 이 작품이 공연될 새 극장의 터전으로 바이로이트를 택하여 1872년 그리로 이주한다. 1876년 8월, 바그너 음악극 전용 극장인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문을 열고 개막작으로 〈니벨룽의 반지〉를 공연한다. 1882년 두 번째 작품 〈파르지팔〉이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 진행 중 건강이 악화된다. 축제가 끝난 후 요양 차 떠난 베네치아에서 1883년 2월 13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 극음악 작품 외에도 《예술과 혁명》 《미래의 예술 작품》 《오페라의 사명에 대하여》 《독일 예술과 독일 정치》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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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 (Lorin Maazel) (아티스트)    정보 더보기
미국의 지휘자이며 바이올리스트이기도 한 마젤은 5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로스엔젤레스 출신의 음악가였던 양친을 따라 1938년 피츠버그로 이주하여 1939년부터 헐리우드 볼의 무대에서 지휘했다. 1941년에는 토스카니니의 초청으로 NBC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피츠버그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 공부를 마치고 바이올린 주자로 수년간 활약한 후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1951년 이탈리아에서 바로크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받았으며, 같은 시기에 유럽의 주요 관현악단도 지휘하기 시작했다. 1960년 바이로이트 음악제에서 [로엔그린]을 지휘했을 당시에 그는 이 음악제를 지휘했던 최연소 지휘자이며 최초의 미국인으로 기록에 남게 된다. 경이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며 서정과 격정이 넘치는 지휘로 인해서 마젤은 현대 정상급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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