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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학회/무크/계간지
· ISBN : 9772586476005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6-01-02
책 소개
vol. 33 : 감정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성의 영역과 감정의 영역은 모든 인간이 지닌 뇌신경의 관장 하에 존재하지만, 현실 세상에서 이성과 감정을 대하는 묘한 차별을 발견하게 된다. ‘이성적으로 결정하는 합리성’과 대비시키며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무모함’으로 평가받는 수많은 상황들이 바로 그 예이다. 우열을 가리고자 하면 이성에 손을 들어주고, 통념상 기분과 감정을 앞세워 살기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사고하길 권고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 말했고,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 내면의 해석으로 형성된다”라고 했다. 인간은 본디 감정이라는 기본 토대 위에서 이성을 이용하는 것이며, 눈앞에 펼쳐진 실제 상황을 본 후 감정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판단으로 감정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뉴필로소퍼》에서는 우리 뇌의 준비된 예측 기제로서의 감정은 ‘감정적’인 것과 분명 다르며, 이성보다 열등한 영역에 속해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감정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 “감정을 억누르라 말한 적 없다”
일차원적으로 보자면 기쁨과 즐거움은 좋은 감정이고, 슬픔과 고통은 나쁜 감정이라 지정할 수 있겠지만, 그런 피하고 싶은 감정마저도 의사결정의 열쇠가 되며, 감정 없이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흄도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감정은 가치를 드러내고, 위험을 감지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력의 속도를 높여주는 신체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뇌 손상으로 전두엽에 이상이 발견된 환자들의 일상생활을 관찰한 결과, 지능이나 문제 해결력 등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목표를 세워 미래를 계획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보였다. 물론 후자의 어려움은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기제의 손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뉴필로소퍼》의 필자들은 에픽테토스의 일갈, 곧 “우리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 내면의 해석으로 형성된다”는 깨달음을 염두에 두고, 여러 일상의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문을 구하는 노바투스에게 형 세네카는 분노의 도움으로 옳은 일을 할 동기를 얻을 수 없다며 “미덕은 결코 악덕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성과 감정 사이의 선은 이보다 더 모호하며,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판단에 필수적으로 적용될 때가 많다. 인간은 감정이라는 베이스 위에서 이성을 적용하며, 감정이란 우발적 느낌이 아니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판단으로 유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행복을 수치화하여 현재의 만족도를 측정해주겠다는 각종 애플리케이션 앞에서 우리는 기쁨, 혹은 행복이 ‘많고 적음’으로 수량화할 수 있는 감정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행복의 극대화는 언뜻 쾌락주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철학사에서의 쾌락주의도 맘 가는 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을 당당히 추구하라는 것일 테다. 진정한 행복은 그 쾌락보다도 더 우위에 있다. 기술철학자 톰 챗필드는 ‘살아있음’이라는 불교 용어를 소개하며, 이는 내면과 외부의 삶 모두에 주의를 기울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라 설명한다. 기쁨도 소중하지만 슬픔도 소중하다. 감정을 평가하거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지 말고, 그저 나의 감정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핵심은 오로지 나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충실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뿐이다. ‘살아있음’은 행복이나 쾌락과는 무관하다. 최악의 순간에도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고, 기쁨의 절정에서도 죽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22쪽)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드는가
_ 뇌의 추상화 능력이 감정을 유발하기까지
이번 호에서 언급되는 ‘감정’은 분명 ‘기분’과는 의미의 차별을 둔 단어이다. 기분(mood)이 특별한 목적이 없이 생겨난 일시적 반응인 것과 달리, 감정(emotion)은 즉각적인 느낌을 넘어 앞으로 펼쳐질 환경에 대한 적응을 대비하는 조절 과정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감정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로 신경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상위 0.1퍼센트의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뉴필로소퍼》와의 대담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건 특별한 것이 아닌,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엄연한 신체 활동 중 하나”라고 담대하게 밝힌다. 이성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감정 홀대의 자세도 분명 개선해야 하지만, 감정의 발현과 변화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감정은 신체 기능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결합한 결과이며,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접근은 보편적인 관점도 아닌, 그저 서구식 마음 이론에 불과하다고 배럿 박사는 말하고 있다. 특히 감정을 과학적으로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알로스타시스Allostasis’인데, 이는 뇌가 몸의 필요를 예측하고, 필요가 생기기 전에 미리 충족시킬 준비를 한다는 이론이다. 뇌의 핵심 기능은 생각하거나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알로스타시스, 즉 신체의 예측 및 대비 기능이며, 이 알로스타시스의 변화와 그로 인한 내장 감각의 변화를 우리는 ‘감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배럿 박사가 감정 유발의 기제를 해설해주었다면, 철학자 마거릿 그레이버는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스토아 철학자들의 감정론을 함께 설명해나간다. 가령 스토아 철학자들은 좋은 감정을 느낄 때 ‘고양감’이라는 마음 물질의 변화를 겪는데, 좋은 일이 생겼다는 ‘판단’과 이로써 느껴지는 ‘느낌’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비로소 ‘감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우리 본성의 일부이자 인간이라는 동물의 기능이라면, 감정은 반드시 선행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이른다.
고대 스토아 철학에서 감정은 자발적 행위의 특별 사례에 불과하다. 감정도 내가 수행하는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과 결합해서 판단 내린다. 가령 ‘지금 이렇게 느껴야 해’라는 지시를 마음이 내리면 곧바로 그것이 감정이 된다. (본문 65쪽)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될까?”
- 공감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앎과 삶을 연결할 수 없다면 철학은 필요 없다’는 모토로 글을 연재하는 철학자 황진규는 이번 호에서 공감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수많은 소통의 장에서 누군가의 경험과 감정에 즉각적인 공감의 표시가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필자는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오래된 속설에 반기를 들며, 지나친 공감은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증폭시키는 결과만 불러올 것, 그리고 지속적인 동정이 삶의 활력을 파괴하며 끝내 깊은 허무 속으로 안내하고야 만다고 경고한다. 자존(自尊)이 동반되지 않는 공감과 동정은 일상의 무너짐을 가속할 뿐이라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번역가, 그리고 시를 쓰는 전대호 시인을 만나, 과학을 전공한 철학자로서의 궤적, 시어를 만듦과 동시에 타인의 언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이중의 작문 이야기를 들어본다. 특히 헤겔 철학에 집중하여 헤겔의 《정신현상학》 해설서를 출간했던 그는 “가장 안정적이었다고 생각하던 그때가 가장 불안한 날들이었음도,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가 바로 새로움이 열리는 순간이었다는 깨달음”이라 설명하며 난해하다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주었다.
지난 3년간 《뉴필로소퍼》에서 공간에 대한 개인 체험의 여정을 들려주었던 임이랑 작가와, 예술이 보내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준 박보나 작가, 이들의 마지막 연재글을 만나본다. 작가이자 뮤지션인 임이랑이 마지막 공간으로 선택한 곳, 그에게 악몽을 꾸게 만들 정도의 고통이자 동시에 살아갈 이유가 되는 그곳, 곧 무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아울러 박보나는 ‘복고’라는 이름의 트렌드가 자주 등장하여 대중문화를 장식하는 요즘, 어딘가 밀려난 주변부나 외곽으로 눈을 돌려 따뜻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시선의 전환을 호소한다.
목차
News from Nowhere
Intro _ 마음이 어느 방향을 원하는가 _ 잔 보그
Happiness _ 해석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 _ 톰 챗필드
Wisdom _ 내버려두는 삶을 꿈꾸며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Comic _ 카를 마르크스, 직장을 구하다 _ 코리 몰러
Meaning _ 철학은 기분에서 시작된다 _ 안토니아 케이스
Anger _ 분노로 투사가 될 수 없는 이유 _ 패트릭 스톡스
Labour _인정받을 곳 없는 감정 노동 _ 마리나 벤저민
Interview _ 감정을 억누르라 말한 적 없다 _ 마거릿 그레이버
Expression _ 감정을 해부하려 했던 의사 _ 기욤 뒤센
Loneliness _ 누군가의 윤리적 청자가 되어 _ 앙드레 다오
Art _ 갓 솟아오른 감정의 예술 _ 나이젤 워버튼
Interview _ 뇌는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_ 리사 펠드먼 배럿
Research _ 6만 명에게 묻다 _ 데브라 트램프 외
Fear _ 두려움의 쓸모 _ 마이샤 체리
Society _ 행복, 불가능의 향유로부터 _ 알랭 바디우
Interview _ “태양의 중력에 비낀 제 길로” _ 전대호
공간이랑 _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다 _ 임이랑
앎과 삶 _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될까? _ 황진규
Thinking in pictures _ 다른 질서라는 새로운 상상 _ 박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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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다. 우리가 좌절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 진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을 헐뜯을 때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이 나쁘다는 당신의 생각이다. 우리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 내면의 해석으로 형성된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달렸다.
▲ 에픽테토스, 《대화록》 중에서
직업상 나는 주로 언어와 논리를 다룬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감정이 최우선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이 사랑과 슬픔, 분노와 기쁨의 감정은 수시로 우리 가족을 갈라놓았다가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한다. 이때 우리 몸이 머리보다 훨씬 앞질러 감정을 소화한다. 그리고 감정도 생각의 한 형태다. 단지 아주 미묘해서 환원도 계량도 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나 자신도 아직 노력 중이지만, 슬픔과 분노가 사랑과 기쁨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소중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나 처리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따라서 억누르려 하거나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 비결이다
▲ 해석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 _ 톰 챗필드
건강 관리, 가정 관리, 습관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히 큰 성취인 양 칭찬을 받는다. 날씬한 몸매는 자기관리에 힘썼다는 사회적 증거가 되고,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사람은 자기관리에 소홀했다는 확신을 준다. 자기관리에 열성적인 사람들이 ‘매력 발산’에 유리할지 몰라도, 나는 이제 외모 관리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자기 최적화의 ‘끝판왕’은 건강 중심주의, 자본주의, 성차별주의, 장애인 차별주의, 노인 차별주의의 최대 가해자가 되기 쉽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방치’하는 사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 내버려두는 삶을 꿈꾸며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