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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1185057040
· 쪽수 : 112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006
첫 장을 여는 말 011
설거지 013
빛손길 016
첫눈을 기다리다 020
두려움 위를 걷다 025
묵수도아가 030
껍데기를 벗어라! 036
약주 발 이름 041
발밑에 교만 045
찬란한 안녕-아이젠! 049
비밀 암호 ― 점심 사 줄 게! 나와! 055
다이아 반지 061
두려움을 녹이다 066
도서관 여행 071
휴전 중 변명 075
그저 가기나 해! 081
나이는 시끄럽게 오다 086
가방은 가볍게 091
드라마에 들키다 097
십오 년 막걸리 100
그분이 오셨다! 106
글을 맺으면서 111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책상을 포기하고 설거지를 즐긴다.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을 때면 물소리에 문장을 생각해내는 재미를 붙였다.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본업이라고 정한 후부터 설거지를 하면서 일기보다 더 일기다운 글도 생각하게 되었다. 물소리에 남편의 텔레비전 소리도 묻히고, 개구쟁이 아이들의 또닥거리는 말소리도 묻힌다. 물소리에 가만히 내뱉고 싶은 말들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설거지하면서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날 좀 가만히 놔두라고!’
- P.14 「설거지」중에서
정월대보름이면 주름진 손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주름진 손이 빛이 되는 것이다. 그 손으로 준비된 음식이 상에 오르고, 또 한 번 빛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것은 한 해를 밝혀 주기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은 이렇게 해마다 거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잠으로 어둠을 보냈다. 아침마다 일어나보면 음식은 차려져 있었다. 그래서 밥은 잠을 자야만 생기는 줄 알았고, 해가 지면 여실히 이불속으로 기어가 잠을 잤다. 어릴 적 나는 밤은 어둠과 잠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밤에 어둠뿐 아니라 빛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P.17 「빛손길」중에서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녹아져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내가 써 댄 글이 묵직하다 해도 눈처럼 사라지길 바란다.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읽는 이의 눈 속에 심장 속에 녹아 사라지길 바란다. 소리조차 없이, 물이 눈을 삼켜 버리듯 그렇게 녹아 사라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심장 속에 뜨거운 불이 지펴지길 바란다. 첫눈처럼.
- P.23 「첫눈을 기다리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