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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01159256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
제1막_외면할 수 없었던 운명의 장난
제1장_댁의 아들이 사고가 났어요!
제2장_누가 가장 운이 없을까?
제3장_삶의 나락 아니야
제4장_노친네와 노부인
제5장_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제6장_발 씻은 물, 많이도 마셨네
제7장_오빠, 괜찮아?
제8장_날아간 금메달
제9장_차가운 밤에 두 눈 번뜩이며
제2막_피아노,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
제10장_무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11장_피아노와 나는 애매한 관계
제12장_멋진 형님, 류더화
제13장_발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게 그리 어려워?
제14장_나의 기네스 도전기
제15장_오디션에 나가라고?
제16장_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칩니다
제17장_이 모든 것은 사랑의 대가
제18장_안기는 행복을 아세요?
제3막_행복은 당연한 권리
제19장_인품 보존의 법칙
제20장_‘한턱 형’과 ‘저녁밥 누나’
제21장_쌤통이다, 쌤통이야
제22장_적어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잖아
제23장_인생은 지하철 1호선
제24장_진정한 나는 원래 그곳에
제25장_우리는 열라 끝내줄 거니까
제26장_멈추지 않는 박수 소리
에필로그_태어났으면 멋지게 사는 거다
리뷰
책속에서
“하나, 둘, 셋, 넷….”
술래가 벽에 얼굴을 대고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우리는 서둘러 흩어졌다. 몸이 날쌘 나는 항상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 숨었더랬다. 그날도 재빨리 사방을 둘러본 다음 숨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다. 한 녀석도 나를 따라왔다. 바로 공동주택 구석에 있는 배전실이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낮은 빨간 벽돌담을 넘어 쉽게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 긴장한 채 바깥 상황을 살폈다. 한 사람씩 술래에게 발견되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술래는 더 멀리까지 샅샅이 찾아다녔지만 우리가 숨은 곳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득의양양해진 우리는 숨어 있는 주제에 배짱 좋게 잡담을 나누기까지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우리는 드디어 술래가 항복하는 소리를 들었다.
“야, 류웨이하고 또 다른 녀석. 나와라, 내가 졌다!”
그 말을 듣자마자 싱글벙글해진 우리는 술래한테 가려고 벽돌담을 기어올랐다. 벽돌담 바로 밑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벽돌담을 기어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발을 디딘 벽돌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담을 붙잡고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흔들리던 벽돌이 떨어지면서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졌고 두 팔이 변압기의 벗겨진 전선에 닿았다.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변압기가 폭발했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pp.16-17(‘제1장: 댁의 아들이 사고가 났어요!’ 중에서)
그 무렵 어머니는 내가 결심을 굳힌 것을 알고 내가 다닐 사립 음악학교를 알아봐주셨다. 어머니가 음악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 나는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시기를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바라는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꽤나 흥분한 기색으로 조금이라도 과장됐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인지 알 길이 없는 면담 상황을 설명하셨다. 음악학교 교장 선생님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당혹스러운 표정과 무시하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정말 유감스럽다는 듯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런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뭔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했고, 급기야는 모진 말까지 했다.
“이런 학생이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평판이 안 좋아집니다. 우리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생들 중에서도 용모가 빼어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나는 어머니가 비분강개하셨을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됐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할 때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기라도 하듯 되뇌셨다고 한다.
“만약 댁의 아들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모든 일을 이야기하고 나서 내 어깨를 붙잡고 간곡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아들, 우리 절대 지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말을 다 듣고 나서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화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나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말씀과 편파적이고 오지랖 넓은 평가에 되레 감사했다. 그리고 에둘러 완곡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도 감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진심으로 내 삶에 출현하는 악역을 맡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안일함에 빠졌을 때 시기적절하게 극약 처방을 내림으로써 나로 하여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그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무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p.131-132(‘제10장: 무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