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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25541884
· 쪽수 : 464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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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시선을 더러운 방바닥에 고정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수안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해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조용히 입구를 비켜주는 수안을 보았을 때, 나는 빠져나오지 못한 눈물이 그 속에 고여 있음을 알았다. 수안은 좀 더 슬프고 싶었다는 걸, 아직도 승모의 죽음을 미처 다 슬퍼하지 못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누군가의 죽음과 사라져간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인내의 시간을 두고 품위 있게 슬프고 싶었다. 농밀하게 슬픔을 나누고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되지 않았다. 진짜 슬픔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품위 있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잠결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그가 또 다시 다가와 내가 쳐놓은 경계를 넘지는 않을까 하고. 허락 없이 경계를 넘으려 할 때 화를 내면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멈추었다. 살아가면서 몇 번 서로에게 상처를 받다보면 그렇게 훈련이 되곤 했다. 거리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산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사람일 것만 같았다. 그런 점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