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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25552545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14-03-2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에필로그
헌사
CREDITS
리뷰
책속에서
앙리 푸앵카레는 선뜻 그 무덤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를 배회했다. 마침내 저녁 어스름이 그를 빨아들일 때까지, 혼령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끌어당길 때까지.
13년 동안 그는 이 공동묘지에 찾아와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모든 국가 영웅의 기념비들을 돌아보았다. 새내기 형사 시절 그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정의를 사랑한 대가로 언젠가 자신도 증조부와 나란히 눕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렇게 큰 야망을 품었기에 사건을 해결할 때면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 불굴의 정신과 지력을 총동원하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저 한 목숨을 되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을 천 번도 더 내줄 수 있었다. 영혼을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악마의 거래도, 심지어는 자살조차도 그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었다. 푸앵카레는 ‘이미’ 살았고 그가 사랑한 이들을 다치게 했다. 가장 끔찍한 증거가 이 조용한 공동묘지 한구석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그는 걸어갔다. 그 무덤 위에 자신의 그림자가 절반쯤 드리울 때까지.
구름들이 서로 뒤섞이고 나무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매주 도르도뉴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정오에 도착해 묘석을 청소하고 꽃을 갈아주는 것. 그는 삶의 일부를 떼어 그 일에 분배했다. 손 빠른 남자라면 몇 분 만에 먼지와 쓰레기를 깨끗이 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관리인에게 빗자루를 빌려 한 시간 동안 비질을 했다. 바람에 날려 온 쓰레기 조각을 줍다가 또다시 봄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 여전히 수선화가 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선화는 피어 있었다…. 이런 공동묘지에도, 새들이 돌아와 지저귀었고 나무들은 잎을 틔우고 있었다. 그것은 위안이 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온전한 손으로 무덤 위에 신선한 백합을 놓았다. 그러곤 말했다.
“가엾은 나의 사랑. 그들은 엉뚱한 사람을 죽였어. 나를 죽였어야 했는데.”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선택한 어느 도시의 금요일 오후 5시 교통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정체가 심하겠죠? 이건 인간의 시스템입니다. 인간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고,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이 만든 차에 타고 있으며 다른 인간들이 놓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지요. 여기까진 동의하십니까? 자동차와 교통 정체가 전적으로 인간의 시스템이라는 것 말입니다. 교통공학 전문가들은 수학, 구체적으로 유체역학의 법칙을 사용해 교통류를 연구합니다. 어째서 강의 흐름과 용적, 속도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출퇴근 시간의 교통류에도 적용하는 걸까요? 하나는 인간의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시스템인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교통공학 전문가들이 유체역할을 사용해 고속도로를 설계할 수 있을 만큼 물과 충분히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관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연관이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시스템이 모두 그러하듯 인간의 행동도 수학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지요. 우리는 자연의 복잡한 시스템, 즉 복잡계를 설명하는 규칙들이 인간의 복잡한 행동 또한 설명할 수 있음을 밝힐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문가에 서서 호흡기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맞춰 클로에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침대 옆에서 가서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커튼을 쳤다. 시트는 흰색이었고 천장의 트랙에 매달린 커튼도 흰색이었으며 푸앵카레의 가운과 마스크도 이번만큼은 파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구름을 타고 이 세상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문제 위로 떠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클로에, 파피야.”
그가 말했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클로에의 몸 어느 한 군데도 손을 댈 수 없었으므로 그는 그 위로 두 팔을 내밀어 손녀를 떠안는 시늉을 했다. 정말 그렇게 그 애를 안은 적이 있었다. 클로에가 갓난아기일 때 그는 아기 방 구석에서 그 애를 안고 있었는데, 첫 손녀를 안고 침착하게 돌아설 수 없는 그를 보고 클레르와 에티엔과 루실은 손가락질하며 웃고 울었다. 지금 화상 센터 2C호실에서 커튼을 치고 그 애와 단둘이 있는 것처럼 그날도 그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단둘이 교감했다. 그는 허공에 내민 두 팔을 좌우로 흔들었고, 그러자 어딘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저절로 멜로디가 올라왔다. 마침내 경비들이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지만 푸앵카레가 낮고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며 너무도 다정하게 허공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한동안 멍하니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들이 그를 끌어낼 때 그가 말했다.
“아이가 다 알아들어요. 내 노래를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