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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27415350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5-11-15
책 소개
목차
■ 혼자 있기 좋은 날
봄 | 여름 | 가을 | 겨울 | 봄의 문턱
■ 출발
작품 해설(노자키 간)
옮긴이의 말(이영미)
리뷰
책속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손버릇이 나빴다.
그렇긴 해도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훔칠 만한 용기는 없어서 대개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물건을 노려서 수집품에 보태 가는 게 어린 마음에도 나름 쾌감이었다. 새로 나온 필통이나 운동화 같은 게 아니라, 지우개나 붓, 클립 등등 딱히 필요도 없는 하찮은 잡동사니들을 모아 왔다. 기념사진을 찍는 기분으로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교복 주머니 속에 몰래 감췄다. 훔치는 게 아니라 회수하는 것뿐이라고 자기 정당화를 해 가며 죄책감을 떨쳐 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게 쾌감을 한층 더 높여 주었다. 그와 동시에 왜 다들 그렇게 부주의한지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 사람은 말이야, 다정하고 키가 크고 눈이 아주 부리부리한, 좋은 사람이었어. 대만에서 온 사람인데, 일본어도 잘했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다들 반대했고, 얼마 안 지나 그 사람은 자기 나라로 가 버렸지.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어. 세상이 다 싫어져서 평생 동안의 미움을 그때 다 써 버린 기분이었지.”
“평생 동안의 미움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난 이제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아.”
“어떻게 다 써 버렸어요?”
“잊어버렸지.”
“난 지금 허무함을 다 써 버리고 싶어요. 노인이 됐을 때 허무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