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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은이)
  |  
문예중앙
2011-06-25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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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책 정보

· 제목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27802235
· 쪽수 : 487쪽

책 소개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박범신의 장편소설. 마술적 리얼리즘과 하드고어라는 파격적 스타일로 목숨보다 더 사랑한 여자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던 야수 같은 남자의 처절한 사랑을 그리며 사회적 폭력의 위태로운 재생산 구조, 인간 마성의 근원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다.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살인의 기록
정강이뼈
샹그리라
밝은 눈
클레멘타인
가족회의, 본능적으로
단식, 개안수련
대화
돌아눕는 뼈
탄생 이전에서 온 슬픔
에필로그: 말굽이 하는 말

작품해설: 죽음은 죽지 않는다 | 양윤의

저자소개

박범신 (엮은이)    정보 더보기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흉기》 《흰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빈 방》 등,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외등》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 《주름》 《소소한 풍경》 《당신》 《유리》 등 다수가 있고, 산문집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힐링》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23년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그 소소한 의미를 담아 두 권의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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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손바닥에 정말 말굽이 생겨난 것이다. 남에게는 물론이고 평소엔 내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 내 손바닥에 분명히 말굽이 들어 있다.
말굽이 생긴 뒤로 손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다. 생명선의 상단은 이미 지워지고 없다. 말굽으로 뭔가를 내려치면 칠수록 손금이 그만큼 가속적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말굽의 힘이 강화되면, 생명선은 물론 손금이 모두 없어질는지도 모른다.
생명선이 사라지면 죽는 걸까, 아니면 영원히 사는 걸까.
손바닥에 쇠말굽을 숨겨 지니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래도 슬픈 느낌이다.


남자의 상반신이 이윽고 말쑥하게 드러났다.
운악산 칼바위에서 쏟아져 내려온 북풍이 남자의 벌거벗은 웃통에 예리하게 박혀들었다. 나는 이내 쩍 하고 입을 벌렸다. 단련이 잘된 훌륭한 몸매였다. 팔을 벌리자 가슴의 승모근(僧帽筋)이 산맥처럼 단번에 일어섰다. 어깨 삼각근과 양팔의 이두박근도 훌륭했다. 목에서 쇄골로 이어진 힘줄은 뚜렷한 V자를 그려냈으며 배에는 王자가 선연히 부조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과 뛰어나게 발달된 젊은 몸매의 부조화는 차라리 기괴했다. 이상하고 언짢은 부조화였다. 나의 시야에서 잠깐 벗어났다가 다시 나타난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칼날이 햇빛과 만나 번쩍했다. 장도(長刀)였고, 잘 갈린 진검(眞劍)이었다. 목이 움찔해졌다. 질이 좋은 진검은 쇠파이프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타고난 무사의 풍모가 뚜렷했다.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 때의 칼날은 급류를 타고 오르는 날치 같고 내리칠 때의 칼날은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햇빛까지 두 동강 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찌르고 때로는 베고 때로는 허공을 날렵하게 가로 그었다. 재빠르게 내딛는 발끝은 유연해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떤 자세에서도 남자의 턱은 정면을 향해 꼿꼿했다. 눈에서는 이따금 푸른 섬광이 번쩍 뻗어 나왔다. 어떤 신념에 가득 찬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남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은 보다 투명해졌다.
칼끝이 나를 겨냥한 것은 한바탕의 춤사위가 끝날 무렵이었다. 찌르기 자세였다. 살기가 확 느껴졌다. 나를 겨냥한 것은 칼끝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눈화살도 문틈을 비집고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나와 남자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존재를 알고 있어, 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과 남자가 한걸음으로 헛간의 문 앞까지 돌진해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었다.


창밖으로 귀를 열면 가랑잎들이 비탈길을 쓸고 가는 소리가 먼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오랫동안 노숙자로 떠돌던 남해 쪽빛 바다가 때로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 도시로 돌아오게 될까 봐 두려워 떠돌던 세월이었다. 죽을 때까지 결단코 오지 않으리라고 골백번은 맹세했었다. 감옥에서 4년, 부산에서, 마산-진해, 사천, 광양, 여수에서, 또 목포의 바다 끝에서 비렁뱅이 노숙자로 흘러 다닌 것이 10여 년이나 되었다. 겨울바닷가는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틀이나 사흘을 완전히 굶은 적도 있었다. 굶고 누워 있을 때조차 겨울바다는 저 혼자 끝없이 깊어졌다. 백사장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칼바람을 견딘 날도 부지기수였다. 죽음 직전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잠이 들면 한 소녀를 찾아 헤맸다.
볼이 붉고 이마가 하얀 소녀였다. 처음엔 분명했던 얼굴이 시간 따라 조금씩 지워지는 슬픈 경험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아주 옛날에 볼 붉은 소녀가 있었다.’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감옥에서 나올 때쯤 소녀의 턱과 입술이 지워졌고, 떠돌이로 10년쯤 지나자 콧날과 눈과 귀도 완전히 지워졌다. 소녀가 그리우면 피가 밸 때까지 손바닥으로 바위나 벽돌담장이나 철판 따위를 두들겼다. 아무리 두들겨도 소녀의 얼굴은 완성되지 않았다. 손바닥에선 자주 껍질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심지어 이름까지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닳아 없어졌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끓는 물에 손을 넣은 일도 있었다. 닳아 없어진 기억들은 복원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조차 그냥 소녀…… 라고, 이름 모르는, 보랏빛 점을 가진 소녀…… 라고만, 불러야 했다. 오랜 노숙자 생활에 그만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것은 형태 없는 붉은 볼과 박속같이 하얀 이마와 짙은 눈썹 끝의, 팥알만 한 보랏빛 점 하나였다. 내 안에서 오래 묵어, 소녀는 마침내 전설이 되고 만 것이었다. ‘아주 옛날에 보랏빛 점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라고 나는 동화책을 읽듯이 자주 소리 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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