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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27804130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13-01-31
책 소개
목차
1부
시(詩)
의심
철창
진부에서 한 철
마방(馬幇)
카페 바그다드에서 쓰는 엽서
초원에 새가 없다
디어 헌터
신폭(神瀑)에 들다
생각의 정거장에서 보내는 엽서
목사리 개가 이 세상에 고함
이력
꿈
유서(遺書)
바람이 보내는 경배
바람의 사원
어린 마부와 양
2부
검은 빗속에서
맘고생
빈집
방문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명상
유폐
마흔네 번째 반성
독촉
그, 사이
밤과 낮
땅
먼 날
달력
목련
안심
심란(心亂)
3부
정거장 그리고 낙타
위태로운 사랑
오래된 책
왼손의 그늘
스토커
추방
주홍글씨
노을 대합실
귀환
7번 국도에서 쓰는 편지
향연(饗宴)
학교
서신에서 보내는 편지
다시 서귀포(西歸浦)에서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
섬
결혼식
4부
고아(孤兒)
고아 2
예세닌을 생각하는 밤
귀와 모자
광저우 광주 서울
치악산 황조롱이
귀거래사(歸去來辭)
우광식 열전
소화 십일 년도 《조선문학》에 대한 채만식의 변(辯)
돈(豚), 황
동행
치매
가을 나루에서
아버지의 쌀
그늘이 지다
아버지의 발자국
귀향
시론
해설 | 雪山 정거장에 서 있는 낙타 한 마리 · 엄경희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는 나를 일찍 떠난 어머니였으며
왜소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였으며
쓸쓸한 내 성기를 쓰다듬어주던 늙은 창녀였으며
머리에 흐르던 고름을 짜주던 시골 보건소 선생이었다
시는
마당가에 날리는 재(灰)였으며
길을 잃고 강물 따라 흐르는 밀짚모자였다
폭풍 전야, 풀을 뜯는 개였으며
탱자나무 가시 아래 모인 새이기도 하였다
늘 피가 모자라 어지러워하던
한 소년이 주먹을 힘껏 모았다 펴면
가늘게 떨리는 정맥
그곳에 시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시((詩)」 전문
정거장에서 한 여자와 그리고 또 다른 한 여자를 기다리며 오래 서 있었을 때 한 여자는 집을 나섰다는 연락이 오고 다른 한 여자는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기다림으로 한 계절이 흘렀을 때 낙타 한 마리가 정거장 주변의 마른 풀을 뜯고 있었다. 콘크리트 틈으로 얼굴을 내민 시든 풀을 찾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천 킬로미터를 돌아 다시 정거장에 섰을 때 사막의 대상(隊商)들만 점점(點點)이 오갈 뿐 기다림이란 없었다. 낙타에게 기다림 없는 나머지 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랜 기억을 더듬어 옛집을 찾아간다. 평택, 낯익은 이름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러하다. 당신도 그러하다. 떠오른다. 당신이 물을 길어 올린다. 물에서 풀 냄새가 난다. 당신의 손이 담긴 냄새다. 향기의 진원을 찾아 낙타는 걸어간다. 세상의 모든 기다림이 끝났을 때 옛집을 찾아가는 낙타, 정거장은 여전히 석양 중이다.
―「정거장 그리고 낙타」 전문
내 속에는 세 명의 男性이 산다
끝없이 女子가 되고 싶어 하는 하나
축축한 가랑이를 벌려주고 싶어 한다
누구나 와서 몇 겹의 꽃잎을 들추고 입 맞출 수 있도록
모든 그대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그러나 속되지는 않게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아주 아름다운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손에만 의지해야 하는 다른 하나
내가 연민하는 나다
그를 위해 울어주고 싶은 날은
주막으로 달려가지만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술병이나 허물다가
집으로 오면 내 모든 남성들은 출타 중이다
아무도 없다
집요한 관음증의 다른 하나
타인의 기쁨을 기쁨으로
타인의 슬픔을 슬픔으로
아무 변용도 없이 받아들인다
나는 내가 그립다
그립다는 말은 자꾸 안으로만 감겨 들어간다
아무것도 그립지 않은 한 남성이 내 성기를 쓰다듬고
위로한다
놀라운, 지긋지긋하도록 놀라운 일
나는 역시 고아였다
―「고아 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