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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8949099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5-12-25
책 소개
목차
이성혁 비평_삶의 갱신을 위한 서정의 창조
김명리 시_눈의 무게 외 9편
손현숙 시_화악산 외 9편
우대식 시_겨울 산판집 외 9편
유종인 시_시와 시래기 외 9편
이경철 시_비, 빗소리 외 9편
이윤학 시_서대마을에서 1 외 9편
이만영 비평_장소, 기억, 존재
김태형 수필_식당이 많은 우리 동네 외 1편
박생강 소설_언니의 강가, 두물머리 외 1편
유다정 동화_깨비의 열돌 잔치 외 1편
이상권 수필_여자들이 좋아했던 싱앗국 외 1편
이우중 수필_어머니와 옥수수 광주리 외 1편
황영경 소설_턱거리로 간 수지 이모 외 1편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_ 서대마을에서 1
이윤학
백 년을 넘긴 대추나무가
서쪽으로 기우는 달밤입니다
수평으로 퍼지다 직각으로 올라간
얼마 되지 않은 대추나무가지에도
이른 메밀꽃처럼 꽃이 핀 달밤입니다
훤히 뚫린 개집 안 더 아픈 강아지가
끈질기게 앓는 강아지의 등에 바짝 붙어
흰 털을 핥으며 실눈을 빗뜨는 달밤입니다
* 서대마을: 경기도 가평 소재.
소설_ 턱거리로 간 수지 이모
황영경
(중략)
갈 때까지 가버려 더는 오갈 데가 없을 때 겨우 매달렸던 동두천의 턱거리. 병든 수지 이모는 재기를 꿈꾸며, 다시 한 번 ‘엔조이’의 인생을 바랐을까.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는 턱거리. 정식 행정명은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 아직까지 턱거리 안쪽에 남아 있는 미군 캠프. 미군 병사가 호기롭게 “토꼬리!”라고 외쳤을 때 어떤 택시 기사는 혹시 “토끼꼬리”로 알아듣지 않았을까. 정문의 한국인 보초병이 내게 들어올 거냐는 손짓을 했다. 나는 도리질을 하며 기웃거렸지만, 삼엄한 경계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군 캠프 진입로에 양옆으로 늘어선 바라크 같은 단층의 건물들. 어쩌면 수지 이모도 저쯤의 어떤 쪽문 앞에 서서 “헤이, 플레이, 플레이! 두유 워나 핫걸?”을 외치며 미군 병사들을 유혹하지 않았을까. 두둑한 생명 수당의 달러를 움켜쥐고 언제 월남전으로 차출되어 갈지 몰라 불안한 분기탱천의 젊은 피를 기어이 터뜨려 짜내야 하는 병사들. 그들이 요구하는 온갖 ‘서비스’를 다 감내해냈다는 핫걸.
수필_ 먹고사는 일의 슬픔
김태형
(중략)
머리가 희끗한 것을 보니 아마도 그는 섬유 관련 회사에서 조금 이르게 명예퇴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도 영락없는 자영업자였으리라. 그것도 95퍼센트에 속한 영세 자영업자.
“사업은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가지고 있는 거 지키기만 해도 성공하는 거죠.”
그가 방금 나를 내려주고 간 곳도 전국에서 영세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아마도 그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후회와 부끄러움과 어떤 알 수 없는 분노를 애써 외면하느라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택시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나는 고맙다고 인사만 했다.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곧 영세 자영업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영세 자영업자가 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