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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27804246
· 쪽수 : 163쪽
· 출판일 : 2013-03-25
책 소개
목차
1부 두 입술의 효용
리미티드 에디션
고양이 수프 깡통
허전(虛傳)하는 고백
4월 1일
집, 밥, 까마귀
외피족(外皮族)
파이 소녀
고수부지 언더그라운드
열광(熱狂)하는 너와 나
구강(口腔)
바늘 끝
나는 새는 11월
앵무조개 무늬는 한 번 더 아름다워지고
우주 마루
그치가 갔다
끝
오늘의 일기
따스한 등뼈
얼마나 더한
도착(倒錯)
불행(不行)
북해(北海)
2부 검은 눈 검은 입술 검은 혀, 응
본, 눈
나는 11월에 태어나
독순(讀脣)
빨간 인형은 인형을 안고
성스러운 가(街)
칼날의 한때
시태양시(視太陽時)
연인들
이런 꽃
자청(刺靑)
사과를 안다
아마도 아닌 다시는 없는
미러볼
밤은 짧아, 그래도 응
투명한 양탄자
실종족(失踪族)
흡혈백작부인
요정 나만의 요괴
아이슬란드, 얼음 식탁
맛있는 자기(自己)
코코 샤넬은 정말
3부 입술이 입술인 것을 잊지 않을 때
동물원 시계탑
투과족(透過族)
갑을의 방식
우각호(牛角湖)
죽은 죽음
빨강의 이름으로
달의 어두운
이제 그만, 메리 크리스마스
어딘가, 무지개너머
꺼진 방은 검정 당신도 검정
로비 러브
일어나, 거인
나비 이야기
하치
삶은 소년
동지(冬至)
어제 만나요
피는 피
출사탕기(出砂糖記)
Happy Birthday
동물원 다녀오는 길
알아 그래 몰라
중독
해설 모두 말한 다음에 남은, 시 . 김나영
저자소개
책속에서
무덤 위에서 해봤어? 등을 받쳐주는 둥근 체위 스커트 물들이는 풀빛 위로 해를 가리는 새떼들 위로 빠르게 그어지는 비행운 위로 너무 환해 볼 수 없는 햇무리 위로 뻥 뚫어진 허공 위로 하염없는 순간, 맞춤한 이 가봉으로 뭘 만들 수 있을까 모르지만 한 번의 이 옷을 나는 사랑해, 사랑해 헐떡이며 가윗밥을 넣었지 그게 아니라면 완만한 주검에 주름졌을 거야 바늘땀 사이 삭아가는 옷깃이 보였을 거야 심장에서 모든 게 생겨난다 했지 심장에 가닿는 핏줄, 핏줄에 이어지는 장기들, 싱싱한 이 심장을 네게 바칠까 해 그런데 심장은 어디서 오니 심장의 심장은 어디서 오니 콧구멍에 마늘 박은 채 춤은 어떻게 추니 뜨거운 키스가 어떻게 가능했던 거니 입술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시간, 출렁이는 무덤 위 우리라는 이 만우(萬愚)
―「4월 1일」 전문
다만 살기 위해 그대는 걸어가네
흘러온 물줄기와 흘러갈 물줄기,
섞이며 길을 트는 깊은 물빛 속을 헤매네
검은 얼룩이 푸른 멍이 되고
푸른 멍이 붉은 상처가 될 때
그대가 처음 사랑에 눈떠 눈이 멀 때
순한 마음이 꽃 머리처럼 천천히
환함을 향해 구부러질 때
함께 휘어졌을 등뼈
계단을 오르네 망루를 오르네
지축을 흔드는 소음 속
한 걸음씩 옮길 뿐이네
그대가 뭉쳐낼 우주와
그대가 이뤄낼 일가를 지나
꽃들이 꽃 피우는 법을 알아내기 전에
새들이 발톱 달린 날개를 퍼덕이기 전에
먼지뿐인 우주 속 작은 먼지인 그대가
얼굴 없이 떠다니던 때를 지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고만 있으니
시원(始原)의 먼지들 고요하고 단단하여
그대도 나도 우리들의 꿈도
이미 다 이룬 것과 진배없으니
이후로는 떨어질 일도 불탈 일도 사라질 일도 없으니
따스함이 이제야 온밤을 다 덮을 것 같네
희디흰 그대 등뼈들
쌓인 눈 위로 또 내리고
얼음을 풀고 나온 공기방울들
만장을 따라 흩어지고
―「따스한 등뼈」 전문
전쟁 중인 수용소 하늘에서
립스틱이 비처럼 쏟아졌다니
다 죽어가던 여인들이 살아났다니
밥도 아니고 옷도 아닌 그것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컴컴한 바닥
오물을 딛고 담요만 걸친 채로도
빨강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니
살기 위해 벌레를 잡아 삼키는 빨강과
핏기 가신 입술에 부들부들 바르는 빨강과
뭉개 바른 입술 벌린 채 눈 못 감는 빨강까지
입술이 입술인 것을 잊지 않을 때
심장이 심장인 것을 잊지 않을 때
지금은 지금인 것을 잊지 않는다
말없는 아가리를 열어젖혔다
주먹을 날려 터뜨렸다
손톱을 세워 발라냈다
생생한 것들이 피어났다
시간을 삼켜 거침없이 낳았다
지겨운 중음(中陰),
넌 끝이다
―「빨강의 이름으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