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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27806592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5-06-25
책 소개
목차
책을 읽는 분들에게
그때 한탄강 물은 明鏡止水였다
아버지의 考終命
天地不仁 春來不似春
권말부록
저자소개
책속에서
“동생, 글 한번 써보는 게 어때”
“무슨 글인데요?”
“그거 있잖아. 나하고 단둘이 연천에서 전곡까지 밤새도록 초행길을 걸어 38선을 넘던 1947년 깜깜한 겨울밤의 얘기 말야.”
“아, 그거요? 얘기는 되지요.”
“그때는 동생이 무척 아팠잖아.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그랬지요. 그런데 글이라면 형님이 더 잘 쓰시는 것 아닙니까”
“나도 쓸 수야 있지.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기록물은 아무래도 철학을 배운 나보다는 역사를 전공한 동생이 엮는 게 주제에 걸맞고 리얼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글쎄요? 빛바랜 어릴 적 체험담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활자화시킬 가치가 있는지는 얼른 판단이 안 서네요…….”
(……)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설날과 추석, 부모님 제삿날 등 해마다 네 번은 큰형님 댁에서 꼭 모이고, 한식·벌초·시제 때는 가급적이면 모두들 고향에 내려가 한나절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도 그 후엔 “한탄강을 건너 38선을 넘던 얘기를 써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은 재론된 일이 없었다.
(‘책을 읽는 분들에게’ 중에서)
1947년 이른 봄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작은형과 나를 앉혀놓고 중대 발표를 하셨다. 그때 형은 열두 살, 나는 열 살이었다. 철부지 넷째와 막내 젖먹이는 옆에서 잠든 그런 밤이었다.
세월이 어수선하고 공산당이 갈수록 극성스러워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 아버지가 계신 서울로 가신다는 거였다. 집과 가재도구는 모두 버리고 가되, 서울엔 아직 일곱 식구가 기거할 집을 마련하지 못해 일단 동생 둘만 데려가고 형과 나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척집에 맡겨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철이 들어서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는 날까지 나는 한 번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 일도 안 하시는 무위도식의 표본이었다. 매일 늦잠에서 깨어나 조반상을 받으시면 몇 숟갈 뜨시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셨다. 저녁엔 몇몇이 어울려 청요릿집에 드나든다는 말도 있었고 기생집에서 세월을 보낸다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