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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엄마혀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0108256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6-05-25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0108256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6-05-25
책 소개
튀르키예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르의 소설집 『엄마혀(Mutterzunge)』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독일어로 1990년 출간된 소설 데뷔작이자 이민문학 작가로서의 언어관과 세계관이 가장 뚜렷이 각인된 대표작으로, 외즈다마르를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튀르키예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르(Emine Sevgi ?zdamar, 1946- )의 소설집 『엄마혀(Mutterzunge)』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독일어로 1990년 출간된 소설 데뷔작이자 이민문학 작가로서의 언어관과 세계관이 가장 뚜렷이 각인된 대표작으로, 외즈다마르를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여기 수록된 네 편의 소설들은 모국(튀르키예)과 이주지(독일)라는 두 세계를 몸언어로 겪고 기억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막 독일로 이주한 '나'가 열차 차창 너머의 쾰른 대성당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한순간에서부터, 장미 향기와 양탄자로 뒤덮인 아랍어학자의 작은 모스크와 마치 '동방의 현대 민담'처럼 펼쳐지는 튀르키예-독일의 여정, 그리고 독일 국경에 모여든 인물들의 다채로운 사연과 고국의 '오필리아'가 독일의 청소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까지. 이 책에는 튀르키예의 사회적 현실과 독일 이주 노동자의 일상이 짙게 반영되는 한편, 전통적인 구전 서사와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같은 서구 작가들의 흔적, 작가의 연극적 상상력과 자전적 요소가 뒤섞이며 독창적인 문체로 그려진다.
독일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르는 튀르키예 출생의 독일 작가이자 배우, 연출가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독일 문단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소위 '이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약했다. 일찍이 1991년 비원어민 작가 최초로 잉게보르크바흐만상을 수상한 이후 연이어 독일의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하면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2022년 게오르크뷔히너상 수상 당시 '독일어와 독일문학에 새로운 지평과 주제를 가져온 탁월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민문학 작가라는 제한적 수식을 넘어 독일어권 현대문학 내 주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튀르키예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독일로의 노동 이주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외즈다마르 역시 이러한 경험을 공유한다. 1960년대 중반 베를린으로 이주한 작가는 약 이 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연극 교육을 병행했다. 그 후 이스탄불로 돌아갔으나,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정치적 압박이 심해지자 1976년 스스로 '전방으로의 도피'라 명명한 독일행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미학에 영향을 받은 외즈다마르는 서베를린의 자유분방한 거주 공동체와 동베를린의 극장을 오가며 연극 작업을 이어 갔고, 베노 베송, 마티아스 랑호프, 클라우스 페이만 등의 연출가들과 함께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1982년 희곡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엄마혀를 언제 잃어버렸는지 알 수만 있다면"
이 책에는 외즈다마르 특유의 민담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동시에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튀르키예의 구술 전통과 언어 감각을 표준 독일어 속에 과감히 끌어들여 언어를 넘나들고, 문화와 기억, 몸의 감각을 교차시키는 데 탁월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 '엄마혀'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모국어'를 의미한다. 독일어 '언어(Sprache)' 대신 튀르키예어 '혀(dil)'를 독일어 '혀(Zunge)'로 그대로 옮겨 구성한 복합어로, 이 단어는 추상적 체계로서의 언어가 종종 잊어버리는 몸의 감각을 기억과 정체성, 삶의 경험과 긴밀히 연결한다. 네 편의 소설들은 각각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비추어 가며 공통의 질문들로 수렴된다. 이 책 전체에 흐르는 것은 "인간에게 말과 언어란 무엇인가, 사회와 문화는 말과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얽히게 만드는가, 삶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로 형상화되는가,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들"(「옮긴이의 말」 중에서)이다.
첫번째 단편 「엄마혀」는 튀르키예 출신의 '나'가 모국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모국어를 잃어 가는 경험을 그린다. '나'는 브레히트의 희곡에 매료되어 독일어에 대한 희망을 품었지만 기차 식당 칸에서 메뉴판이나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보며 실망하고, 결국 모국의 죽음과 병든 현실을 짊어진 '엄마혀'를 다시 찾게 된다. 그러나 이제 모국어로 된 글들은 '나'가 열심히 공부한 외국 문자들처럼 읽히며, 엄마가 말한 문장을 떠올릴 때조차도 마치 엄마가 독일어로 말한 것처럼 기억된다. 이 과정에서 갖게 되는 '괴르메크(보다)', '카차 게치르메크(인생의 궂은 일)', '이슈치(노동자)', 이 세 단어는 단순한 모국어 어휘가 아니라 폭력과 고통, 그리고 이주 이후의 삶이 층층이 쌓인 흔적으로서 이해된다.
두번째 단편 「할아버지혀」에서 화자는 「엄마혀」의 연장선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튀르키예의 문자 개혁 이후 단절되었던 할아버지의 언어(아랍어)를 배운다. 이 과정에서 스승과의 육체적 정신적 사랑 그리고 상처를 체험한 화자는 훨씬 더 많은, '유년기'를 가진 모국어 단어들을 익히게 된다. 이처럼 이주자의 정체성과 삶의 감각을 구성하는 체험을 통해 확장된 언어 학습은 화자가 타인에게 자신을 '단어수집가'라고 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주자들의 비애와 웃음이 교차하는 일상
한편 세번째 단편 「알라마니아의 카라괴즈: 독일의 검은 눈」에서는 '카라괴즈(튀르키예 전통 그림자극 또는 그 주인공)'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가 튀르키예 시골에서 독일이라는 대도시로 공간을 이동하며, 본격적으로 두 국가 간의 언어적 충돌이 펼쳐진다. 외즈다마르의 문장은 문법적 안정성을 의도적으로 흔들며, 언어의 리듬과 호흡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책의 옮긴이이자 독문학자인 최윤영에 따르면 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는지가 이번 번역의 관건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예를 들어 '동무', '동료'를 뜻하는 '콜레지(Kollege)'의 변형된 발음인 '콜레가(Kollega)'와 같은, 이주노동자(Gastarbeiter)들의 '브로큰 독일어'가 그대로 등장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옮긴이 주를 달거나 주로 조사를 빼는 방식으로 언어의 특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본래 희곡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한편으로 사회적 갈등, 이해 또는 오해, 웃음과 불안의 교차를 통해 작가의 연극에서 비롯된 감각을 선명히 드러낸다. 농부가 자신의 똑똑한 당나귀와 함께하는 여행길에, 그리고 독일에서 노동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은 이주노동자로서의 현실과 전통적 구전 서사가 겹쳐지는 독특한 장면을 구성한다. 소위 '민중'의 초상이 적나라하고 날카롭게, 또한 풍자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지는데, 이는 외즈다마르가 튀르키예에서 경험한 정치적 억압과 어두운 가난뿐 아니라 독일의 경제적 풍요에 내재된 냉정함과 오만함의 사회를 응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자들은 건강검진을 통과하기 위해 다른 이의 오줌을 사고, 크리스마스 휴가 선물로 샴페인과 거위를 받자마자 해고된다. 축구선수로 위장한 불법 노동자는 농장에서 사과를 따다가 추방당하며, 한 남자가 금니를 할 만큼 돈을 번 방법은 사람들에게 똥 누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물건을 악기 삼아 엉터리 독일어로 시를 노래한다.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연극적 상상력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 아래 형성된 외즈다마르의 유년기는 그를 "말의 힘을 믿는 여성 이야기꾼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가로 이끌었다. 특히 할머니는 어린 외즈다마르에게 튀르키예의 민담과 전설, 구술문학의 전통을 매개한 인물이었다. 외즈다마르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구술 전통이 반복되며, 말, 몸, 죽음이라는 주제를 개성적으로 부각시키는 문화적 토대가 된다. 「할아버지혀」에는 비밀을 들어주는 '인내의 돌'이나 예언자 유수프의 이야기처럼 이슬람 문화권과 튀르키예의 신성한 종교적 이야기나 민담과 속담, 노래 등이 풍성히 담겨 있다. 「알라마니아의 카라괴즈: 독일의 검은 눈」에는 독일 국경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쿠란에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튀르키예로 돌아가는 길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농부의 아내는 할머니에게 전해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소환하며, 구술 문화와 서구적 공간이 소설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채롭게 뒤섞인다.
네번째 단편 「어느 청소부의 이력: 독일에 대한 회상」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한 여러 고전 희곡을 연상시키는 구조와 장면으로 구성된 패러디작이다. 고국에서는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였던 화자가 이혼을 하고 독일로 이주해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는데, 외즈다마르가 연극 무대에서 접했을 고전의 허구적 인물들과 장면들은 이주자가 처한 현실과 어우러지며 의미가 전복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화자가 일하는 고층 건물의 거주자들은 꽃병과 달콤한 밤에 대해 노래하고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듯하지만, 화자가 아침이면 문 앞에서 주워 담는 것은 똥과 깨진 달걀껍데기 같은 비천한 것들이다. 그러나 패러디가 단순한 희화화로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외즈다마르는 "권위적 텍스트를 다른 자리로 옮겨 놓고,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여는 문학적 전략"으로 패러디한다. 작품 후반부에는 작가 머릿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독일의 '남자화장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점거하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마주한다. 역자는 "그 수많은 대화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성을 제대로 캐치하고 옮기려면 아마도 앞으로 여러 번의 새로운 번역이 필요할 것"(「옮긴이의 말」 중에서)이라고 밝힌다.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이나 부모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외즈다마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한 사람은 손님으로 앉아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외즈다마르가 떠올리는 풍경 속의 둘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이처럼 언어의 상실, 이주의 경험, 정체성의 흔들림, 기억의 문제는 특정 시대나 지역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이번 한국어판은 독일로 이주한 튀르키예 출신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 놓으며, 두 언어를 넘어서 이제 세 언어 사이의 충돌과 혼종을 문학적으로 경험해 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삼십여 년 전에 씌어진 작품이 여전히 현재적인 감각과 깊은 울림을 전하는 까닭이다.
여기 수록된 네 편의 소설들은 모국(튀르키예)과 이주지(독일)라는 두 세계를 몸언어로 겪고 기억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막 독일로 이주한 '나'가 열차 차창 너머의 쾰른 대성당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한순간에서부터, 장미 향기와 양탄자로 뒤덮인 아랍어학자의 작은 모스크와 마치 '동방의 현대 민담'처럼 펼쳐지는 튀르키예-독일의 여정, 그리고 독일 국경에 모여든 인물들의 다채로운 사연과 고국의 '오필리아'가 독일의 청소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까지. 이 책에는 튀르키예의 사회적 현실과 독일 이주 노동자의 일상이 짙게 반영되는 한편, 전통적인 구전 서사와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같은 서구 작가들의 흔적, 작가의 연극적 상상력과 자전적 요소가 뒤섞이며 독창적인 문체로 그려진다.
독일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에미네 세브기 외즈다마르는 튀르키예 출생의 독일 작가이자 배우, 연출가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독일 문단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소위 '이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약했다. 일찍이 1991년 비원어민 작가 최초로 잉게보르크바흐만상을 수상한 이후 연이어 독일의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하면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2022년 게오르크뷔히너상 수상 당시 '독일어와 독일문학에 새로운 지평과 주제를 가져온 탁월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민문학 작가라는 제한적 수식을 넘어 독일어권 현대문학 내 주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1960-1970년대에는 튀르키예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독일로의 노동 이주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외즈다마르 역시 이러한 경험을 공유한다. 1960년대 중반 베를린으로 이주한 작가는 약 이 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연극 교육을 병행했다. 그 후 이스탄불로 돌아갔으나,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정치적 압박이 심해지자 1976년 스스로 '전방으로의 도피'라 명명한 독일행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미학에 영향을 받은 외즈다마르는 서베를린의 자유분방한 거주 공동체와 동베를린의 극장을 오가며 연극 작업을 이어 갔고, 베노 베송, 마티아스 랑호프, 클라우스 페이만 등의 연출가들과 함께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1982년 희곡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엄마혀를 언제 잃어버렸는지 알 수만 있다면"
이 책에는 외즈다마르 특유의 민담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동시에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튀르키예의 구술 전통과 언어 감각을 표준 독일어 속에 과감히 끌어들여 언어를 넘나들고, 문화와 기억, 몸의 감각을 교차시키는 데 탁월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 '엄마혀'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모국어'를 의미한다. 독일어 '언어(Sprache)' 대신 튀르키예어 '혀(dil)'를 독일어 '혀(Zunge)'로 그대로 옮겨 구성한 복합어로, 이 단어는 추상적 체계로서의 언어가 종종 잊어버리는 몸의 감각을 기억과 정체성, 삶의 경험과 긴밀히 연결한다. 네 편의 소설들은 각각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비추어 가며 공통의 질문들로 수렴된다. 이 책 전체에 흐르는 것은 "인간에게 말과 언어란 무엇인가, 사회와 문화는 말과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얽히게 만드는가, 삶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로 형상화되는가,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들"(「옮긴이의 말」 중에서)이다.
첫번째 단편 「엄마혀」는 튀르키예 출신의 '나'가 모국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모국어를 잃어 가는 경험을 그린다. '나'는 브레히트의 희곡에 매료되어 독일어에 대한 희망을 품었지만 기차 식당 칸에서 메뉴판이나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보며 실망하고, 결국 모국의 죽음과 병든 현실을 짊어진 '엄마혀'를 다시 찾게 된다. 그러나 이제 모국어로 된 글들은 '나'가 열심히 공부한 외국 문자들처럼 읽히며, 엄마가 말한 문장을 떠올릴 때조차도 마치 엄마가 독일어로 말한 것처럼 기억된다. 이 과정에서 갖게 되는 '괴르메크(보다)', '카차 게치르메크(인생의 궂은 일)', '이슈치(노동자)', 이 세 단어는 단순한 모국어 어휘가 아니라 폭력과 고통, 그리고 이주 이후의 삶이 층층이 쌓인 흔적으로서 이해된다.
두번째 단편 「할아버지혀」에서 화자는 「엄마혀」의 연장선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튀르키예의 문자 개혁 이후 단절되었던 할아버지의 언어(아랍어)를 배운다. 이 과정에서 스승과의 육체적 정신적 사랑 그리고 상처를 체험한 화자는 훨씬 더 많은, '유년기'를 가진 모국어 단어들을 익히게 된다. 이처럼 이주자의 정체성과 삶의 감각을 구성하는 체험을 통해 확장된 언어 학습은 화자가 타인에게 자신을 '단어수집가'라고 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주자들의 비애와 웃음이 교차하는 일상
한편 세번째 단편 「알라마니아의 카라괴즈: 독일의 검은 눈」에서는 '카라괴즈(튀르키예 전통 그림자극 또는 그 주인공)'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가 튀르키예 시골에서 독일이라는 대도시로 공간을 이동하며, 본격적으로 두 국가 간의 언어적 충돌이 펼쳐진다. 외즈다마르의 문장은 문법적 안정성을 의도적으로 흔들며, 언어의 리듬과 호흡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책의 옮긴이이자 독문학자인 최윤영에 따르면 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는지가 이번 번역의 관건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예를 들어 '동무', '동료'를 뜻하는 '콜레지(Kollege)'의 변형된 발음인 '콜레가(Kollega)'와 같은, 이주노동자(Gastarbeiter)들의 '브로큰 독일어'가 그대로 등장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옮긴이 주를 달거나 주로 조사를 빼는 방식으로 언어의 특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본래 희곡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한편으로 사회적 갈등, 이해 또는 오해, 웃음과 불안의 교차를 통해 작가의 연극에서 비롯된 감각을 선명히 드러낸다. 농부가 자신의 똑똑한 당나귀와 함께하는 여행길에, 그리고 독일에서 노동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은 이주노동자로서의 현실과 전통적 구전 서사가 겹쳐지는 독특한 장면을 구성한다. 소위 '민중'의 초상이 적나라하고 날카롭게, 또한 풍자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지는데, 이는 외즈다마르가 튀르키예에서 경험한 정치적 억압과 어두운 가난뿐 아니라 독일의 경제적 풍요에 내재된 냉정함과 오만함의 사회를 응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자들은 건강검진을 통과하기 위해 다른 이의 오줌을 사고, 크리스마스 휴가 선물로 샴페인과 거위를 받자마자 해고된다. 축구선수로 위장한 불법 노동자는 농장에서 사과를 따다가 추방당하며, 한 남자가 금니를 할 만큼 돈을 번 방법은 사람들에게 똥 누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물건을 악기 삼아 엉터리 독일어로 시를 노래한다.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연극적 상상력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 아래 형성된 외즈다마르의 유년기는 그를 "말의 힘을 믿는 여성 이야기꾼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가로 이끌었다. 특히 할머니는 어린 외즈다마르에게 튀르키예의 민담과 전설, 구술문학의 전통을 매개한 인물이었다. 외즈다마르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구술 전통이 반복되며, 말, 몸, 죽음이라는 주제를 개성적으로 부각시키는 문화적 토대가 된다. 「할아버지혀」에는 비밀을 들어주는 '인내의 돌'이나 예언자 유수프의 이야기처럼 이슬람 문화권과 튀르키예의 신성한 종교적 이야기나 민담과 속담, 노래 등이 풍성히 담겨 있다. 「알라마니아의 카라괴즈: 독일의 검은 눈」에는 독일 국경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쿠란에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튀르키예로 돌아가는 길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농부의 아내는 할머니에게 전해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소환하며, 구술 문화와 서구적 공간이 소설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채롭게 뒤섞인다.
네번째 단편 「어느 청소부의 이력: 독일에 대한 회상」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한 여러 고전 희곡을 연상시키는 구조와 장면으로 구성된 패러디작이다. 고국에서는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였던 화자가 이혼을 하고 독일로 이주해 청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는데, 외즈다마르가 연극 무대에서 접했을 고전의 허구적 인물들과 장면들은 이주자가 처한 현실과 어우러지며 의미가 전복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화자가 일하는 고층 건물의 거주자들은 꽃병과 달콤한 밤에 대해 노래하고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듯하지만, 화자가 아침이면 문 앞에서 주워 담는 것은 똥과 깨진 달걀껍데기 같은 비천한 것들이다. 그러나 패러디가 단순한 희화화로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외즈다마르는 "권위적 텍스트를 다른 자리로 옮겨 놓고,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여는 문학적 전략"으로 패러디한다. 작품 후반부에는 작가 머릿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독일의 '남자화장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점거하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마주한다. 역자는 "그 수많은 대화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성을 제대로 캐치하고 옮기려면 아마도 앞으로 여러 번의 새로운 번역이 필요할 것"(「옮긴이의 말」 중에서)이라고 밝힌다.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이나 부모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외즈다마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한 사람은 손님으로 앉아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외즈다마르가 떠올리는 풍경 속의 둘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이처럼 언어의 상실, 이주의 경험, 정체성의 흔들림, 기억의 문제는 특정 시대나 지역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이번 한국어판은 독일로 이주한 튀르키예 출신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 놓으며, 두 언어를 넘어서 이제 세 언어 사이의 충돌과 혼종을 문학적으로 경험해 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삼십여 년 전에 씌어진 작품이 여전히 현재적인 감각과 깊은 울림을 전하는 까닭이다.
목차
엄마혀
할아버지혀
알라마니아의 카라괴즈: 독일의 검은 눈
어느 청소부의 이력: 독일에 대한 회상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우리 나라 말로 혀는 언어이다.
혀는 뼈가 없어 혀를 돌리는 쪽, 그쪽으로 돌아간다.
나는 돌아간 혀를 가지고 이 도시 베를린에 앉아 있다.
-「엄마혀」 중에서
글들도 내가 열심히 공부한 외국 문자들처럼 눈에 들어왔다. 신문 기사 한 조각.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기 피를 흘렸다.” 파업이 금지되어 있었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손가락을 베고, 떨어지는 핏방울 아래에 셔츠를 대놓고, 피 묻은 그 셔츠로 마른 빵을 둘둘 감고, 튀르키예 군부로 보냈다. 그것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마치 그 소식이 간이매점 앞에 있는 여러 신문들에 났었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혀」 중에서
내가 처음 이브니 압둘라의 문 앞에 섰을 때, 엄마혀 단어는 세 개를 가지고 있었다. 보다, 인생의 궂은 일들을 겪다, 노동자. 나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어머니와 엄마혀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내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을 붙잡기 위해 찾은 단어들은 모두 유년기를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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