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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20501
· 쪽수 : 162쪽
· 출판일 : 2010-04-08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달나라
獨酌
빈숲
법칙
벌레처럼 울다
그리운 우체국
바다로 가는 진흙소
폭설
무늬
어떤 흐린 가을비
내 이름의 꽃말
첫사랑
지도에 없는 마을
파적
퇴근
칠판
두물머리 보리밭 끝
편지를 쓴다
상처적 체질
독백
위독한 사랑의 찬가
제2부
길
새
황사
중독
안쪽
평화로운 산책
도망간 여자 붙잡는 법
홍길동뎐
햇살, 저 찬란한 햇살
추억에는 온종일 비가 내리네
남겨진 것
시인의 근황
86학번, 일몰학과
86학번, 황사학과
낮은 여름이고 밤부터 가을
친절한 연애
분교마을에서
니들이 내 외로움을
만다라다방
極地
이력
제3부
집에 가는 길
풍경
전술보행
머나먼 술집
반성
공무도하가
두번째 나무 아래
둥근 저녁
난독증
유부남
셀라비
반가사유
거룩한 화해
너무 아픈 사랑
치타
사람의 나날
계급의 발견
생존법
聖 삶
겨울의 변방
가족의 힘
구멍 經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탐색
당신의 처음인 마지막 냄새의 자세
쉽고 깊은
더 나은 삶
과거를 ( )하는 능력
해설 통속미 혹은 존재의 희비극 _최현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상처적 체질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위독한 사랑의 찬가
아내는 사랑의 찬가를 듣고 나는 빈방에서
사랑 때문에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된 한 여자의
짧았던 생애를 생각한다 그녀는 세상에 구원은 없다,라고 쓴
유서를 남긴 채 검은 커튼 아래서 죽었다 나는 술집에서
낮술에 취해 그녀의 부음을 들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술잔에 머리를 묻은 채 울었고 그날 함박눈이었는지
새 떼들이었는지 광장에 가득 내리던 무엇인가에 살의를 느꼈었다
삶에서 빛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겨울은 위독하다
술 마시다 단 한 번 입술을 빌려주었던 대학 친구도
겨울에 죽었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과 가난한 애인 사이에서 떠돌다
결국 오래 잠드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랜 잠이
그녀에게 어떤 빛을 데려다주었는지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아내가 사랑의 찬가를 듣는 한낮이 나는 무덤 같고
삶에서 아무런 빛을 꿈꾼 적 없는데도 위독해진다
사랑에 찬가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은 깊이 사랑한 사람이 아닐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의 남편이 되면서 내 사랑은
쉽게 불륜이 되었지만 모든 사랑이 불륜이 되는 삶만큼
구원 없는 세상이 또 있을까 싶어 나는 무서워진다 검은 커튼
아래서 짧은 유서를 쓰던 그녀 역시 무섭지 않았을까
여긴 내가 사랑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썼던
친구 역시 무서웠을 것이다 무서워서
결국 뛰어내릴 수밖에 없는 삶을 건너가기 위해
그녀들은 얼마나 깊어진 절망으로 빛을 기다린 것일까
아내는 사랑의 찬가를 듣고 나는 빈방에서
겨울에 죽은 여자들의 생애를 생각한다 사랑 때문에
사랑을 버리는 일은 그녀들에게 생애의 모든 빛을 버리는 것이었고
모든 사랑이 불륜이 되어버린 나에게 겨울은 문득 위독한 빛으로
검은 커튼을 드리운다
너무 아픈 사랑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