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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전체주의/국가주의
· ISBN : 9788932022109
· 쪽수 : 549쪽
책 소개
목차
서언
제1장 | 히틀러의 집권
1. 나치와 보수 우파의 동맹
2. 군대, 관리, 이익집단
제2장 | 집권 이전의 히틀러 운동
1. 세계관, 선전, 카리스마적 지도자
2. 나치당의 사회적, 조직적, 개인적 프로필
3. 나치당의 조직, 직책, 인물
제3장 | 정치권력의 독점(1933)
1. 1933년 2월
2. 의사당 화재 사건과 대통령 긴급명령
3. 1933년 3월 5일 선거
4. 수권법
5. 정당의 종말
제4장 | 주의 제국 통합과 새로운 분권주의
1. 주 권력의 장악
2. 프로이센 도감독과 제국주총감
3. 제국개혁의 중단
4. “대독일제국”과 병합 지역
제5장 | 사회권력의 장악
1. 경제적 배경
2. 노동정책
3. 상업정책과 수공업정책
4. 대기업정책
5. 농업정책
제6장 | 제3제국 초기의 당과 국가
1. 1933년 봄 나치 혁명의 성공과 한계
2. 나치 당원의 규모
3. 히틀러, 나치당, 돌격대
4.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종결
5. 돌격대의 거세
6. 혁명적 외교의 실패
7. 나치와 개신교
제7장 | 공무원과 행정
제8장 | 지도자권력
1. 프리츠 토트
2. 제국노동봉사단
3. 히틀러청소년단
4. 친위경찰
5. 헤르만 괴링
6. 협의제 내각의 종식
7. 지도자와 정부
8. 정부 입법에 관한 법
제9장 | 1938년 이후의 지도자절대주의와 다중지배
1. 군대
2. 외무부
3. 4개년계획
4. 전쟁경제
5. 전쟁
6. 제국방어위원회
7. 슈페어와 괴벨스
8. 참모실
9. 마르틴 보어만
10. 지도자비밀명령
11. 학살
제10장 | 사법
제11장 | 결어
옮긴이 해설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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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그런 유의 지도자는 혼자 힘으로, 혹은 비범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 덕분에 위대한 역사적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 개인의 전기에서는 그의 특별함을 설명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진부하기 짝이 없던 히틀러가 정치 무대에서 그토록 갑작스럽게 부상한 것 역시, 그런 지도자는 특정한 위기의식과 집단 심리의 흐름 속에서만 자라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독일 민족주의의 광범한 병리 현상과 함께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던져서 그 병리를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히틀러가 발휘하던 그 비상한 열정이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다. 기괴한 별종 인간을 민중의 가슴을 울리는 선동가로 만든 것은 바로 그 위기였다. 정치적 교사敎師로서 히틀러는 레닌에게 한참 못 미치는 인물이다. 그는 교사라기보다 촉매제였다. 새로운 것을 덧붙이지 못하지만,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 긴장과 위기의식에 불을 댕기는 화염이요, 그것이 활활 타오르도록 해주는 연료로서, 그에게는 가공할 만한 일이 시작되도록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역사적 역할은 개개인의 정치적 노이로제를 집단적인 노이로제로 변환시키고, 사회에 가득한 흥분 상태를 개개인의 집착과 역동성의 기제와 행동으로 변환시키는 데 있었다. 따라서 히틀러의 지도력은 역설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실제적인 위기의식의 익명적인 대표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당대에 편재했던 흥분은 통합적 인물인 그를 통해서만 정치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제2장 「집권 이전의 히틀러 운동」, 48~49쪽)
권력이 폭력적이고 혁명적으로 장악되는 동시에 기존의 정부가 장송葬送의 노래 한마디 없이 불명예스럽게 실각하는 모습은, 3월 6일에 헤센에서도 되풀이되었다. 그날 헤센의 돌격대와 친위대 대원들이 무장 보조경찰대를 구성하여 주도主都 다름슈타트 시내를 휩쓸고 다녔다. 경찰이 그들과 동행한 것으로 보아, 그날 돌격대의 작전은 정규 경찰의 용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치 행동대와 정규 경찰이 함께 움직이자, 나치가 이미 새로운 ‘치안 주체’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었다는 인상이 심어졌다. 돌격대와 친위대는 공공건물에 나치 당기를 게양했고, 나치 헤센 지구당은 경찰권을 인수하기 위하여 주내무부를 점거했다. 프리크는 헤센 내무부를 나치에게 넘기라는 명령을 이미 하달하였으나, 그 명령은 아직 다름슈타트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찰이 나치 행동대를 막아섰다. 그러나 돌격대는 출동한 경찰에게 폭력을 가하고 경찰관들로부터 무기를 빼앗았다. 그들은 또한 3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날 밤에 헤센 주총리 아델룽과 내무장관 로이슈너를 자택에 연금했고, 외부와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전화선을 끊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프리크가 임명한 제국위원 하인리히 뮐러가 헤센 내무부를 장악했고, 이어서 친위대원인 베르너 베스트를 제국경찰위원에 임명했다. 뮐러는 나치 헤센 지구당 위원장 슈프렝거의 측근으로서 헤센 주의회에서 나치당의 내무정책을 전담하고 있었고, 젊은 베스트는 헤센 주의회 의원이자 나치 지구당의 법률 전문위원이었다. (제4장 「주의 제국 통합과 새로운 분권주의」, 154쪽)
나치 지도부가 1933년 여름부터 실업을 극복하기 위하여 펼친 선전 활동과 모금 운동(히틀러는 1933년 8월 31일에 뉘른베르크 나치당 전당대회에서 실업 극복을 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언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가들이 모금 운동을 압력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933/34년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벌인 실업자와 빈곤층을 돕자는 캠페인은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그 운동은 우선 나치당의 투쟁을 정치권력의 장으로부터 국가 운영의 장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실제 모금액이 별로 크지도 않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나치당의 선전이 실물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민족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의식을 강화했고, 새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암시의 결과이든 조작의 결과이든, 국민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히틀러는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그러한 생각은 나치 체제가 가난한 사람들의 물질적 상황을 개선하고 실직자들을 재취업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자율성과 자유의 권리들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보상해주는 효과도 낳았다. (제5장 「사회권력의 장악」, 200~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