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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22536
· 쪽수 : 156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풀
버섯
섬돌
됫박
백골전서(白骨全書)
겨울 선자(扇子)
오래된 담요
오늘의 문장
간장 종지
모란 송사(送辭)
꼽추 여자 대추 따는 남편
휘종(徽宗) 생각
사용하지 않는 길
낮달
앵두를 거르다
손수건
신발 베개
현(玄)
연밥을 후비고 가는 새들
눈과 개
꽁무니를 보다
삵
맨밥
그 밤의 영정
콧병
마흔
살구 두 개가 있는 밤
석물(石物)
파도라는 거
봄의 강가
이끼
밤 인사
다시, 들리다
육교에서
생기
개복숭아나무의 저녁
야생란
술
부추꽃
사슴 시인 학교
다른 소리
먹기러기들
은수염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첫눈을 밟고
철(鐵)을 버리다
수세미외
부여 옛날국수집
입상(立像)
이끼 2
저녁에 스님이 스쳐 갔다
매화와 십자가
오동꽃
비옷
사인펜
횡보(橫步)
가을
토막 잔치
이중섭 지우개
시비(詩碑)를 멀리하다
싸락눈
잡곡
해설 | 현물(現物)의 사랑, 활물(活物)의 시 · 이선경
저자소개
책속에서
삵
초록이 우북해졌다
꽃이 진다는 말을 잎사귀로 가리고
꽃들이 숨는다
다른 연애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병치레에 몸을 주러 가는 모양이다
영산홍 철쭉꽃 만첩조팝꽃
눈에 지는 몇 꽃은
그래도 숨는다 말꼬리를 흘리며,
땅에 듣는 그 꽃의 혼백이 갈릴 땐
꽃자루 헐거워진 그 틈새로
뱃구레가 훌쭉한 삵이 든단다
떠날 꽃 떠도는 꽃에 울음도 가벼운
노회한 삵이
초승달 같은 발톱을 숨겨 든단다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科)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시인의 산문
아무도 모르는 말을 쓰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말이 소통이 아닌 실물(實物)이길 바란다.
삼라만상에서 소름처럼 끼쳐 나오는 분비물의 감각이길 바란다.
영원이 아니라, 실용이며 변태이길 바란다.
가치가 아니라 호흡이길 바라며,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길 바란다.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순간의 자존이길 바란다.
가장 가난한 정치이며 가장 숭고한 무위(無爲)의 말로써
어디든 갈마들어 차돌 같은 눈물을 깨 보이는 차력이길 바란다.
보라, 저 계곡의 바위는 사랑을 모른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사랑을 열어놓고 모두에게 죽음을 보여준다.
나는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사랑을 부르는 거짓말, 부적이길 바란다.
먼 훗날 나의 시가 헛되거든, 그 부적을 불태워
저 찬 계곡물에 타서 마셔버려라.
사랑을 영원에 부치지 않고 현물(現物)에 부쳐 그대가
무엇으로 죽고 무엇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
아, 재가 된 나의 말들은
어디에나 잘 스며 숨 쉬기를 바란다.
눈이 밝은 그대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