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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23908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팔도기획
은반지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
길모퉁이
소녀의 기도
꽃잎 속 응달
진짜 진짜 좋아해
해설 사랑의 기하학_양윤의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먼 훗날 미지의 방문객이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 방문객은 걷는 소리도, 말소리도 내지 않고, 유능한 기획자인 내가 뒤돌아보아주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나는 고개를 돌린다.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원고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건네주는 원고를 유리그릇처럼 소중하게 받아안는다. 그렇게까지 조심하실 필요는…… 나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소설가는 글에 향기를 불어넣을 줄 아니까요.
「팔도기획」
오 여사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군데군데 검게 덩어리 진 숲은 썩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늙은 사내 같았다. 문득 휴게소 관광버스에서 본 추잡한 장면이 떠올랐고, 부둥켜안고 쭉쭉거리던 늙은이 중 뚱뚱한 여자 쪽이 어쩐지 지금의 심 여사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등 뒤에서 밀려오는 오싹한 기운 때문에 오 여사는 무릎에 시큰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숲길을 내려오는 내내 잰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은반지」
“재미있었던 게 뭐냐 하면요, 사흘 내내 버스 타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막 태워달라고 손 흔들고 그래서.”
그 말에 나는 발작을 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그칠 만하면 버스 차창 밖으로 차를 태워달라고 손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다시 웃음이 터졌다.
“나도 그 얘기 듣고 한참 웃었어요.”
도우가 흡족하게 말했다.
“아, 어떡해? 좀 태워주지.”
이렇게 말하는데 다시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열렬하게 웃는 게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았다.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