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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26787
· 쪽수 : 222쪽
책 소개
목차
1부_ 등장
2부_ 암전
3부_ 퇴장
해설_한 번쯤_조효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발가벗겨진 사실이 다리를 오므린 채 자신을 능욕할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지 사실을 위반하며 사실을 재조립하는 순간만이 간헐적으로 숨을 내뱉고 있는 그를 증명할 뿐이었다. 누군가 그 공책을 발견한다면 지금의 그와는 다른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추측하고 상상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공책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두었으니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면, 왜 이곳에서 나가려 하지 않을까, 먼저 공책을 감춰둔 곳으로 갈 것이다.
번번이 일기를 쓰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마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울함에 정신을 온전히 빠뜨리고 싶은 생각에, 소금기 가득한 우울함에 정신을 축축하게 절여낼 수 있기를, 접시에 우유를 조금씩 따라 코를 박고 고양이처럼 핥아 먹었다. 그는. 고양이가 우유를 먹는 것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그가 혀를 내밀고 우유를 핥아먹는 모습을 보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일어났구나. 너는 나의 말없는 유일함이야.
남자의 책. 남자의 이름으로 더렵혀져 있는 책. 언어들이 닫힌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할수록 의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놓은, 어설픈 지성과 치졸한 감성으로 꾸며놓은 허구의 책. 거짓이 얄팍한 속임수로 진실을 농락하고 결국 다리를 벌려놓는 것도 모자라 찢어놓고 마는. 철자가 턱턱 목에 걸리는. 읽을수록 벌거벗은 문장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다시 벌거벗으려 애쓰며. 노란 버섯으로 뒤덮인. 노란 버섯이 전부인. 오로지 노란 버섯처럼 증식하는 언어의 꼬리 물기. 남자는 한 권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