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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 잡지 > 기타
· ISBN : 9772951413048
· 쪽수 : 136쪽
책 소개
목차
가난한 사람이여, 죽지 마라 | 김주희
위폐와 튤립 | 양선형
집 | 위수정
타임캡슐 | 윤성희
책속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적 사회 시스템에 대해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그것은 생산 영역에서의 착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의 사회적 영역 또한 수탈하는, 마치 제 꼬리를 먹으며 자멸하는 뱀과 같다. 또한 살이 찌다가 더는 먹을 것이 없어 이내 자멸하는 자본주의를 설명하기에 무척이나 적절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일상의 재생산을 빚에 의존하는 이들을 계속적으로 포섭하는 금융기관과 오직 부채복지만을 제공하는 국가의 공모 시스템은 무척이나 식인적이다. 결국 채무자는 살을 뜯어먹히지만 죽을 수 없는 살아 있는 시체living dead의 대표 격이다. 선희 언니를 비롯하여 대항 투쟁의 새로운 얼굴에 주목해야 할 때다.
_김주희, 「가난한 사람이여, 죽지 마라」
채권자들은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 내가 안락하고 근면하기를 바라지. 채권자들이 질색하고 두려워하는 훗날의 상황이란 내 죽음이나 실종, 내 방황이나 무기력, 내 질병이나 변덕스러움일 거야. 내 무탈한 생존과 믿음직한 노동의 나날들, 내가 나를 책임지고 건사하기 위해 수행하는 온갖 기특한 활동들이 미래에 그들이 취득하게 될 이자와 동일해지기 때문이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인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욕적이며 면밀한 청사진까지 갖춘 건전한 인간이야말로 원리금을 무해하게 징수할 채무자의 모범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채권자들은 내가 영원히 살아남아 내게 주어진 영원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길 원해. 숨만 간신히 붙은 채로 껄떡거리는 피 묻은 고깃덩어리나 얼굴에 산소호흡기를 장착한 식물인간으로 변신하는 게 내가 채권자들에게 가하는 가장 충격적인 악몽이자 복수일 거야.
_양선형, 「위폐와 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