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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32029108
· 쪽수 : 204쪽
책 소개
목차
죄수 마차를 탄 기사
옮긴이 해설 _ 왕비와 기사의 애절한 궁정식 사랑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책속에서
이 마차에 탄 사람은 모든 존엄성을 상실했습니다. 이후 어느 궁정에서든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를 받들어 환영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시절 잔혹한 죄수 마차가 의미했던 바입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생겨났습니다. ‘거리에서 죄수 마차를 만나거든 성호를 긋고 화를 입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 사랑과 화해할 수 없는 이성은 그에게 이 마차에 타지 말라고, 비난받고 모욕당할 짓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훈계합니다. 심장이 아니라 입술에만 머물러 있던 이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이렇게 권고한 것입니다. 반면에 심장에 있던 사랑은 즉각 죄수 마차를 타야 한다고 그에게 명령조로 재촉합니다. 사랑이 그걸 원합니다. 기사는 죄수 마차에 펄쩍 올라탑니다. 사랑이 원해 명령한 것이라면 치욕이 뭐 대수이겠습니까.
두 기사는 각자 선택한 길로 갑니다. 죄수 마차를 탄 기사는 마치 사랑의 나라에 아무런 방어 없이 무기력한 상태로 끌려온 포로처럼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깊은 생각 속에서 몰아의 경지에 이릅니다. 그는 자기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이름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그의 기억에서 다 지워졌습니다. 그것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다 잊어도 되는 한 가지만 빼고는 말입니다. 그는 그 유일한 대상만을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그는 한 올이라도 끊어질까 봐 사뭇 부드러운 손길로 빗에서 머리카락을 빼냅니다. 세상에 그토록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머리카락에 대한 숭배가 시작됩니다. 머리카락을 눈에다 입에다 이마에다 볼에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수도 없이 가져다 댑니다. 그럴 때마다 환희를 느낍니다. 그것에 그의 행복이 있고 그것에 그의 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것을 가슴에, 속옷과 살 사이의 심장 가까이에 품습니다. 에메랄드나 석류석을 한 마차 가득 준다고 해도 그것과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