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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38247
· 쪽수 : 497쪽
· 출판일 : 2021-03-15
책 소개
목차
어둠의 혼 | 도요새에 관한 명상 | 연 | 미망 | 깨끗한 몸 | 마음의 감옥 | 나는 누구인가 | 비단길
해설 연처럼, 새처럼 | 우찬제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달빛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아버지 얼굴을 본다. 아버지 얼굴은 피칠갑을 한 채 표정이 찌그러져 있다. 눈을 부릅떴다. 턱은 부었고, 입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아버지가 저렇게 변해버렸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만 같다. 낡은 검정색 국민복 단추가 풀어진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 가슴은 내가 어릴 적, 그 무릎에 앉아 재롱을 떨던 가슴이다. 이제 아버지 가슴은 그 두려운 보라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두 팔과 다리는 아무렇게 내던져졌다.
「어둠의 혼」
전쟁은 모든 걸 망쳐. 전쟁을 통해 통일을 도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구적인 분단이 오늘을 살기에는 편해.” 내 말을 형이 반박했다. “너희 세대는 통일의 중요성을 몰라.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건 잘못된 교육 탓이야.” 형 말에 아버지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모든 게 오늘의 교육 탓이라고 했다. 이 물량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가 젊은 애들을 나쁜 쪽으로 몰아가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잃게 했다며, 교육계에 몸담았던 티를 냈다. “통일을 외치는 아버지나 형보다 저희들은 통일에 무관심한 세대죠.” 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인간은 정직이 중요한데 네 생각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말에 잘못은 없었다. 아버지는 정직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
연 장사가 괜찮은 장사거리가 될 리 없었다. 다음 일요일에 순희와 내가 스무 개 연을 들고 저수지 공터로 나갔지만 판 연은 겨우 네 개였다. 미끼로 지렁이나 떡밥을 파는 장사보다 못했고, 낚시꾼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연 팔이가 왠지 부끄러웠다. 그때도 아버지는 집에 머문 지 두 달을 못 채워, 북으로부터 도요새, 들오리, 물떼새가 몰려들어 주남저수지가 새 떼 울음으로 분답시끌해질 무렵, 철새처럼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해도 저문 세모가 임박해서야 예의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또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저건 증말 무신 늠으 미친 짓인지 모르겠다며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아버지가 연을 만드는 일을 방해하진 않았다. 아버지가 돈 한 푼 벌어들이지 않았지만 엄마는 늘 그 정도의 잔소리로 타박을 그쳤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