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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2038377
· 쪽수 : 346쪽
· 출판일 : 2021-03-31
책 소개
목차
책속에서
아내는 신기하기 짝이 없다. 단골을 찾아 나선다고 말했는데, 교토 시내를 변소 빌려줍니다, 변소 빌려줍니다, 하고 떠들며 돌아다니는 건가 싶어 한참 궁리하다 지친 참에, 어느새 돈 통에 8푼을 던져 넣고 변소에 들어간 처녀가 있다. 그다음부턴 잇따라 들락날락 손님들이 좀처럼 끊이지 않기에 아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지키고 섰는데, 머잖아 중간 휴식 팻말을 내걸고 변소 통을 퍼내는 소동―드디어 해 질 녘까지 변소 대여료 8,000푼, 그리고 다섯 짐을 퍼냈다.
“아무래도 남편은 문수보살의 환생인가? 참말로 그 사람이 말한 꿈같은 일이, 난생처음 정말 이루어졌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아내가 술을 사놓고 기다리는 그때, 애통하게도 업혀 들어온 것은 남편의 시신.
“하치베의 변소에서 복통 발작을 일으켰는지 죽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을 나가자마자 3푼을 내고 하치베의 변소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남이 열려고 하면,
“에헴, 에헴……” 기침을 하고 그 기침에 목소리도 쉬고 낮이 긴 봄날, 일어설 수도 없게 되고 말았나. - 「변소 성불」
“오늘 밤 애송이들이 그 끈을 잡아당기러 갈지도 모르는데……” 하고 분장실에서 아파트로 전화를 걸자 남편은 졸린 목소리로,
“그래? 그렇담 끈을 끌어 올려놓지 뭐.”
“아니에요,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란코는 미소 지었다.
“껄렁껄렁한 녀석들이긴 해도 무대 위의 나한테 호응을 해주기도 하니까. 내 소중한 홍보 담당자예요. 아주 세련되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뭐라도 좋으니 먹을거리를, 단팥빵 같은 걸 끈 위에 매달아줘요. 어차피 아침부터 밥 구경이라곤 통 못 해봤을 녀석들이니까 엄청 좋아하겠죠. 란코는 멋지다고, 인기를 얻을 걸요.”
“으음.” 하품 뒤섞인 대답을 하긴 했어도 가난한 시인인 그에게 빵을 살 만한 돈이 없었다. 방 안을 빙 둘러보니 란코가 받아 온 화환뿐이었다.
그런데 빵보다 꽃을 더 반기는 기풍이 불량소년들에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런가. - 「매여 있는 남편」
“일반적으로 데스마스크라는 건, 그게 누구 것인지 모르고 보면 성별을 구분할 수 없지요. 예컨대 베토벤처럼 우람한 얼굴의 데스마스크도 물끄러미 보노라면 여자의 얼굴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여자다운 여자는 없었던 터라 데스마스크도 참으로 여자다우려니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이처럼 죽음을 이길 순 없었습니다. 죽음과 함께 성 구분도 끝나는 거지요.”
“그녀의 일생은 여자라는 데서 오는 기쁨의 비극이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더할 나위 없이 여자였어요. 그 비극에서 그녀가 이제야 완전히 벗어난 거라면” 하고 그는 악몽이 사라진 후련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며,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아도 좋겠군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 데스마스크 앞에서.”-「데스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