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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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오사카 출생. 어려서 부모를 잃고 조부모의 손에 자랐으나 할머니와 누나, 할아버지를 연이어 여의고 중학생 무렵 고아가 되었다. 그로 인해 마음에 드리워진 짙은 허무와 고독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20년 도쿄제국대학에 입학, 기쿠치 간의 동의하에 제6차 《신사조》를 창간하고 이듬해 《초혼제일경》으로 등단하며 신감각파 작가로 주목받았다. 1924년 졸업 후 《문예시대》를 창간, 〈이즈의 무희〉, 《설국》 등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체가 돋보이는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 근대 서정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문예간담회상, 기쿠치간상, 노마문예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문화훈장,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일본 고유의 미를 살린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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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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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현재의 도쿄 신주쿠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긴노스케.
1890년,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영문과 입학. 1893년,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졸업. 1895년부터 96년까지 《도련님》의 무대가 된 마쓰야마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사를 역임했다. 1904년, 2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제1고등학교 교수와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강사를 겸임했다. 1905년 1월,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1906년 〈도련님〉을 《호토토기스》에 발표하고, 〈풀베게〉를 《신소설》에 발표했다. 1907년에 모든 교직에서 사임하고 아사히신문사에 입사,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우미인초〉, 〈몽십야〉, 〈만한기행〉, 〈피안 지날 때까지〉, 〈마음〉 등 수많은 작품을 《아사히신문》에 연재하고 책으로 출판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16년 12월 9일, 만성적으로 앓던 위궤양이 악화되어 향년 49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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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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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십일 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는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후 한동안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5년 맹장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에 걸린 그는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같은 해에 소설 「역행」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다. 그는 이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듬해 파비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정신 병원에 수용되자 커다란 심적 충격을 받았다. 첫 창작집 『만년』은 감각적 문체와 실험적인 기법으로 일본 문단에 그의 존재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결혼과 함께 안정기에 전개된 중기 문학은 『옛이야기』를 통해 유머 넘치는 이야기꾼 다자이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그의 작품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그는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해,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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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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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이 낳은 가장 찬란하면서도 비극적인 천재. 사상과 행동의 경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전후 일본의 가장 문제적 작가.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
1925년 도쿄에서 고위 관료의 장남으로 태어나 귀족적 교양과 군국주의적 긴장이 공존하던 시대의 공기를 어린 시절부터 체득했다. 조모의 익애 속에 병약한 유년기를 보내며 문학 안에서만 세계를 배웠다. 가쿠슈인 고등부 재학 중 이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1941년 열여섯 살에 조모에 대한 애증 어린 추억이 엿보이는 첫 단편 「꽃이 한창인 숲」을 문예지에 발표하며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했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도쿄대학 법학부에 진학했으며, 1947년 졸업 후 대장성(현재무성)에 관료로 근무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 하고 8개월여 만에 사직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다. 1948년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자전적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이 평단의 찬사와 함께 큰 화제를 모으며 그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내면의 욕망과 사회적 위선이 충돌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파격적으로 묘사하며 전후 일본 문단에 전례 없는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으로 미시마는 단숨에 일본 문학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장편 『파도 소리』로 제1회 신초사 문학상을 수상했고, 1955년 이 작품의 영역본이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미시마의 이름이 해외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1956년 『금각사』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으며 미시마는 명실상부한 국민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파괴 속의 완전성”이라는 역설적 미학을 제시하고, 아름다움과 죽음의 결합을 문학적 주제로 완성했다.
미시마의 세계는 단편 속에서 더 날카롭게 응축되는데, 짧은 이야기 속에서 죽음과 아름다움, 충성과 욕망이 교차하는 세계를 완성했다. 「한여름의 죽음」, 「다리밟기」, 「귀현」, 「온나가타」, 「백만 엔 전병」, 「우국」 등이 그의 전성기에 가장 노련한 문체로 쓰인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예술과 죽음이 맞닿아 있었다. 그는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와 물질문명이 낳은 공허함 속에서, 천황제와 무사의 윤리를 복원하려는 극단적 이상을 좇았다. 1970년 11월 25일, 자신이 결성한 민병 조직 ‘다테노카이’를 이끌고 자위대 막사에 난입해 쿠데타를 촉구하는 연설을 마친 뒤, 할복 자결하였다.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문학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만년의 정치적 성향과 충격적인 죽음으로 그의 삶의 양상은 항상 복잡한 평가 속에 놓여 있다. 단지 그의 작품만은 시간의 벽을 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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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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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일본 에히메 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사르트르, 카뮈 등의 영향을 받아 대학 재학 중에 소설을 발표했고, 1958년 「사육(飼育)」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일본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대 현실을 개인과 역사의 차원에서 깊이 성찰하며 일본의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반전 평화 운동에 힘썼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의 교육 과정을 배경으로 쓴 『나의 나무 아래서』는 자신의 유소년기를 추억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를 탐구하는 책으로, 지식인이자 아버지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1964년 신초샤 문학상, 1967년 다니자키 상, 1984년 가와바타야스나리 문학상 등 유수한 상을 받고,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2012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을 받았다. 2023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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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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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일본 히로시마 출생. 고등학생 때부터 평론을 발표하고 연극 각본을 직접 쓰는 등 열렬한 문학청년이었다. 1969년 요코하마국립대학교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치소에 구금당했다. 이로 인해 글을 읽고 쓸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실어증을 앓기도 했다. 10년 정도의 공백기 끝에 발표한 소설 《사요나라, 갱들이여》가 1981년 군조신인장편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지금까지의 팝 문학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88년에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제1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2002년 이토 세이상, 2012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을 수상했다.
언어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각별했던 만큼,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방면으로 문학적 실험을 이어왔다. 《문학이 이토록 잘 이해돼도 되는 건가》, 《문학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처럼 ‘문학 읽기’ 자체를 심도 있게 파고든 평론을 비롯해, 읽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한 법을 유쾌하게 풀어낸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 동화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한 《겐지와 겐이치로》 등은 그의 오랜 문제의식을 압축한 산물이다. 익숙하고 뻔한 글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새로운 도전을 감내하는 다카하시 겐이치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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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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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수원대학교 명예교수로, 바이코가쿠인대학 문학박사다.
≪일본 명단편집≫ 2차분에는 비교적 읽기 쉽고 재미있는 내용의 단편을 선정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호리 다쓰오의 작품을 선택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젊은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작가이고, 호리 다쓰오는 비교적 뒤늦게 심취하게 된 작가다.
역자는 학창 시절 <오후의 예항(午後の曳航)>이라는 영화를 보고 원작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에게 이끌려 일본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국내에서는 개봉되지 않은 <오후의 예항>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세라 마일스가 주연한 영국 영화로서, 원작 소설의 맛을 거의 완벽하게 영상으로 재현한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일본 유학 중에는 문학평론가 히라오카 도시오(平岡敏夫)와 시인 기타가와 도루(北川透)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탐미적 경향의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연구 논문으로는 <황순원과 미시마 유키오 비교 연구>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 연구> <미시마 유키오 대표작 연구> <호리 다쓰오 작품 연구> <미시마 유키오와 엔도 슈사쿠 비교 연구> <미시마 유키오와 오에 겐자부로 비교 연구> <나쓰메 소세키 작품 연구>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비교 연구> 등이 있다. 번역 작품으로는 ≪금각사≫ ≪인간실격≫ ≪포로기≫ ≪산시로≫ ≪노르웨이의 숲≫ ≪고목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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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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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1남3녀의 막내로 자랐다. 어렸을 때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언니들 영향으로, 10대 이후엔 고독했던 탓에, 책과 음악을 사랑했다. 당시로서는 남들보다 일찍 유학, 대학을 일본에서 나온 것이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읽고 일본인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일본인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전공으로 일본문학과를 택한 건 그 반대로 ‘일본인’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면서도 학부 때는 클래식 음악과 서양/고전 영화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대학과 달리 세계사 시험이 부과되던 게이오 대학을 선택해 공부했지만, 졸업 후엔 존경하던 교수님을 따라 도쿄 대학에서 잠시 보냈고, 마지막 유학 기간은 결국 근현대문학이 강했던 와세다 대학에서 보냈다. 대학원 때는 공부와 육아와 아르바이트의 트라이앵글 스케줄을 오가다 건강을 상하기도 했다. 귀국 후엔 당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일본현대문학 번역시리즈를 만들었다.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의 지성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어진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등 일급 지식인들과의 교류는 이후 중요한 인적·지적 자산이 되었다.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관심에서 썼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사회평론, 2000, 2004년에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로 개제)의 저변에는 근대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를 아시아/여성 시각에서 비판했던 학위논문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단행본은 김석희 옮김, 문학동네, 2007)가 있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뿌리와이파리, 2005/2015)는 한일 양국 민족주의 비판을 강하게, 권력화되는 중이던 ‘진보’ 비판을 소심하게 드러낸 책이었다.
『화해를 위해서』에서 시도한 말걸기는 한국에서는 실패, 8년 후 다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집필하게 된다. 언론의 호의적인 반응에 안도했으나 이후 일본어판 출간과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교류에 대한 지원단체의 경계로 인한 고소고발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11년에 걸친 재판 기간 동안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게 되지만, 함께 화살을 맞고 막아준 이들이 있어 법정의 굴레를 벗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예정에 없었던 여러 권의 위안부 문제/법정 관련 책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뿌리와이파리, 2018),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뿌리와이파리, 2018),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뿌리와이파리, 2020), 『역사와 마주하기―한일 갈등, 대립에서 대화로』(뿌리와이파리, 2022)와 식민지 조선에서 살다가 패전 후 돌아간 일본인들에 대한 일본어판 책 『귀환문학론 서설―새로운 탈식민지화로』(2016),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조선인과 결혼해 조선으로 돌아온 ‘일본인처’에 대한 일본어 논문을 썼다. 문학과 역사와 사상 ‘사이’를 배회하다 보이는 것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작업이 제국주의와 냉전이 동아시아에 남긴 상처의 치유와 우애 모색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2년 정년퇴직 후엔 끝나지 않는 재판을 기다리며 가급적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지냈다. 민사재판이 종료된 2025년부터는 미국 중부 도시와 시골에서 기거하며 방랑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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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성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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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고교 교사로 재임하다가 일본 문부과학성 전액 장학생으로 도일했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 중세 시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 고려대, 인하대 등에서 강의했고 1993년부터 현재까지 국립 한밭대학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 분야는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일본 문학 교육이고 그중에서도 와카가 주된 대상이다. <교고쿠파 와카의 고찰>, <동영상으로 가르치는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영상을 이용한 일본 문학 교육 방법론> 외 많은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는 ≪일본 시가 문학사≫(공저, 태학사, 2004), ≪햐쿠닌잇슈의 작품 세계≫(공저, 제이앤씨, 2011)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 ≪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후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이 있다. ≪금엽와카집/사화와카집≫에서 ≪금엽와카집≫ 93∼138번 노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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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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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 교수로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으로 〈Mobility in the Work of Haruki Murakiami, Focusing on Dance Dance Dance as a Narrative of Mobility〉 등이 있으며, 저서로 《디아스포라 지형학》(공저), 《일본 근현대문학의 명암》, 옮긴 책으로 《산소리》, 《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소설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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