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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0400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2-08-12
책 소개
목차
1부. 임종臨終
2부. 수시收屍
2-1. 작은 몸
2-2. 붉은 몸
2-3. 뒤집힌 몸
2-4. 목 잘린 몸
3부. 안치安置
4부. 발상發喪
5부. 삼우三虞
시 | 못·박지일
에세이 | 번역의 시간·이소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혈족 사이에 흐르는 유전학적 관계망에 도식을 씌운 거예요. 질긴 섬유질 혈관처럼. 이 책 어딘가에는 당신의 이름도 작은 핏방울 크기로 맺혀 있어요. 다른 수만 개의 이름과 함께. 소름. 불현 듯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나요. 조부가 그런 사실들을 당신에게 알려줬을 때 말이에요. 아닌가요? 조부는 이 책들을 족보라고 발음했지만, 당신은 그물로 알아들었잖아요. 조부는 마른 손가락 끝에 침을 묻히면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그물 격자들을 디그시 따라 내려가며. 당신은 식별조차 할 수 없었던 그림들을. 네 기원이랍시고. 정성 들여. 한 자 한 자 읽어주곤 했잖아요.
종가의 가주들은 죽을 때가 되면 늪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늪의 시간, 안개의 일부가 되려고. 이런 특별한 공양 의식으로 당신 혈족은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왔던 거예요. 실제로 어떤 왕조보다, 정권보다 오래 살아남아 어느덧 천 년을 바라보고 있징 낳나요.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물 밑에서 아무 궤짝이나 건져 올려봐요. 죽음에서 인양된 망자들의 얼굴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을 테니.
그러니 내가 어찌 음악에 관해 쓰지 않을 수 있을까.유한한 용량의 족보 책자 안에서 천년만년 같은 운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미련퉁이 혈족이야말로 음악 그 자체나 다름없지 않은가? 우습기도 하지. 조부도 내 이름 석 자를 기재하는 조건으로 쌀가마니 한 수레를 집성촌 곳간에 가져다 바쳤을 테니. 이 값비싼 종이 위에서 가여운 후손을 나타내는 검은색 글씨들이 말라간다. 네 이름 자체가 음악의 한 성부 혹은 무용의 한 동작이 되었구나. 우습다, 우스워. 너희 모두가 우습구나. 우스워서 눈물이 다 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