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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0486
· 쪽수 : 160쪽
책 소개
목차
「전조등」 김기태
인터뷰 김기태×이희우
「오후만 있던 일요일」 위수정
인터뷰 위수정×선우은실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이서수
인터뷰 이서수×이소
리뷰
책속에서
누운 채로 지인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고 뜻 없이 포털의 스크롤을 내렸다. 내일의 날씨는 맑을 예정. 러시아 병력은 수상한 움직임. 케이팝 걸그룹은 빌보드를 정복. 비타민D는 지용성이었다. 조회수가 높은 글을 열어 천천히 읽었다. 나다움을 찾아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다움을 유지하는 다섯 가지 습관을 알아볼까요. 나답게 살기 위해 비혼을 선택했어요. 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 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 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김기태, 「전조등」
원희에게서 조금 떨어진 벤치 주위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남녀 무리가 보였다. 짧은 스커트에 팔이 드러난 셔츠. 누군가 농담을 던졌는지 무리는 동시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아름다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아났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저들도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까. 무심할까. 원희는 한동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이 무지하기를 바랐다. 실수를 반복하고 좌절하기를. 그리고 후회하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위수정, 「오후만 있던 일요일」
그건 집도 아니다. 검은 곰팡이와 붉은 개미의 집이다. 개미는 내가 설치한 독약을 부지런히 날랐다. 수천 마리가 줄지어 벽을 기어갔다. 장장 네 시간 동안 이어진 독약 나르기. 다음 날부터 개미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내가 저지른 살생을 괴로워하는 척하며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개미처럼 머리 위에 독약을, 독약 같은 꿈을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갔다. 줄지어 함께 걸어갈 동료 하나 없이, 혼자서. 모든 꿈꾸는 개미는 다 죽고 나 혼자 남았다. 당연한 결말이다. 나는 마흔이 넘었고, 여전히 꿈을 버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마흔 개의 다리가 달린 개미처럼 쳐다본다.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이서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