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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88932474908
· 쪽수 : 21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옮긴이의 글
매우 사적인 역자 노트: 정물을 둘러싼 즐거운 책 읽기
1 여름 과일 광주리
2 운명의 두상
3 사과와 배
4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
참고 문헌
리뷰
책속에서
정물화는 이급 예술이었고, 교훈적인 장르로서의 흔적은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저 소박한 예술이다. 화가에게 정물화는 언제나 아이디어나 색채, 의견 들을 실험해 보는 데 유용한, 사색하기 좋은 형태의 장르였다. 정물화와 더 크고 야망 있는 회화의 관계는 소네트와 긴 시의 관계와 비슷했다. 페트라르카, 와이엇, 셰익스피어, 밀턴, 던, 홉킨스 이 모두에게 소네트는 그들의 연습장이었고, 고백과 명상의 형식이었다. 정물화는 화가들에게 있어 일종의 레크리에이션이고 기지에 찬 경구였다. 마네가 아스파라거스 한 뭉치를 그리는 것은 그가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치 로시니와 모차르트가 재미로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짓거나 피카소가 탁자보 위에 낙서를 하는 것처럼. _ (여름 과일 광주리)
정물이 지속되는 한, 두상이 우리의 운명이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리기 수년 전, 고대 두상을 책과 악기와 건축 소묘와, 가장자리가 그리스 디자인으로 장식된 테이블보를 그릴 때 함께 그려 넣어 고대의 상징을 재주장하듯 제자리에 배치했다. 〈게르니카〉에서 그 동일한 두상이 전쟁의 폭력 속에 부서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죽음의 캠프에 관한 끔찍한 일들이 폭로되었을 때, 피카소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상하게도 그는 그 응답의 장르로 정물을 택했다. 비쩍 마른 시체들이 물 주전자와 빵 나이프, 그리고 빵이 놓인 탁자 밑에 나뒹구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 그림을 여러 번 수정했지만,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_ (운명의 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