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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32912516
· 쪽수 : 416쪽
책 소개
목차
서문
R
가택 수색
미스 킹
대머리 멕시코인
미지의 여인
그리스인
파리행
줄리아 라차리
구스타프
배반
막후
대사님
동전 던지기
우연한 동행
사랑과 러시아 문학
해링턴 씨의 세탁물
역자 해설: 서머싯 몸과 현대 스파이 소설의 탄생
서머싯 몸 연보
리뷰
책속에서
그는 또 생각했다. 런던의 사무실 안에서 일하는 첩보 기관 고위직 간부들은 이 거대한 기구의 조절판에 손만 얹은 채 흥분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들은 이리저리 장기짝을 옮겨 보거나 형형색색 무수한 실로 무늬가 짜이는 것을 보고(어셴든은 은유를 아낌없이 썼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조각을 맞춰 보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털어놓자면, 어셴든 같은 잔챙이가 첩보 기관의 일원으로 하는 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모험으로 가득한 것이 못 된다. 그의 공무 활동은 시 공무원의 업무만큼이나 판에 박히고 단조롭다. 정기적으로 자신의 첩보원들을 만나 급료를 지불하고, 새 사람을 찾으면 고용한 후 지령을 내려 독일로 보낸다. 정보를 기다렸다가 입수되면 급송한다. 매주 한 번씩 프랑스로 들어가 국경 저쪽에서 활동하는 동료들과 협의하고 런던에서 오는 명령을 받는다. 장날에는 장에 가서 그 버터 장수 노인이 호수 건너편으로부터 가져오는 정보가 있거든 접수하며, 언제 어디서나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생활한다. 그는 또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걸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다가 예상 못 하고 농담을 슬쩍 끼워 넣었다가 경솔한 행동이라고 모질게 질책받은 일도 있긴 하다.
- 「파리행」
그는 자신이 지겨워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R의 손에 의해 뚝딱 만들어진 인물로 사는 것이 기분 전환이 되곤 했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도 부조리한 세상만사에 웃을 줄 아는 그의 예리한 감각을 자극했지만, R은 확실히 그걸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R의 유머는 냉소 쪽이었지 자기 스스로 농담거리가 되는 데는 소질이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외부자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유쾌한 희극의 구경꾼인 동시에 배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R은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건강하지 못하고 비영국적이며 비애국적인 태도로 여기는 천생 군인이었다.
- 「배반」
인간사에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영혼을 괴롭히는 모든 감정 중에서 허영심만큼 파괴적이고 보편적이며 뿌리 깊은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파괴력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허영심의 증거죠. 사랑이 이보다 더 해롭겠습니까. 다행히도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의 공포며 굴종쯤은 웃어넘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허영의 굴레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아요. 실연의 아픔은 시간이 가면 치유되지만, 상처받은 허영심의 고통은 오로지 죽음만이 잠재울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해서 아무 구실도 찾지 않지만, 허영심은 요모조모로 위장하여 우리를 기만합니다. 허영심은 모든 미덕에서 한몫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용기의 원동력도, 야망의 버팀목도 허영심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변치 않는 마음을, 금욕주의자에게는 인내할 힘을 주는 것, 예술가의 가슴속 명예욕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도 허영심입니다. 정직한 사람의 고결함을 지탱해 주는 것도 허영심이요 그 보상도 허영심이지만, 성자의 겸양을 비꼬며 추파를 던지는 것 또한 허영심입니다. 인간은 이놈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대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