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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백제
· ISBN : 9788933707531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8-12-31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머리글
Ⅰ. 기본 자료를 보는 시각
Ⅱ. 백제의 주민 구성과 백제인의 형성
제1부 건국과 성장
제1장 십제국의 건국
Ⅰ. 한강 유역의 선주 세력: 진국
Ⅱ. 온조의 십제국 건국과 지배조직
제2장 지역연맹체 형성과 하남위례성 천도
Ⅰ. 비류의 미추홀국 건국
Ⅱ. 지역연맹체의 결성과 주도권 장악
Ⅲ. 국호의 개칭과 중심지 이동
제3장 부여씨 왕실의 확립
Ⅰ. 초기 왕계보
Ⅱ. 왕실 교체와 부여씨 왕실의 확립
Ⅲ. 부여씨 왕실의 출자
제2부 집권력 강화와 부체제
제1장 부여씨 왕실의 집권력 강화
Ⅰ. 직계 초고왕계와 방계 고이왕계
Ⅱ. 고이왕의 지배 세력 재편
제2장 백제의 마한 병합
Ⅰ. 마한의 성립·성장과 목지국
Ⅱ. 백제와 마한의 관계와 마한 병합
제3장 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Ⅰ. 부체제의 성립
Ⅱ. 부체제의 운영과 제솔회의
제3부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 확립과 중앙집권체제 정비
제1장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 확립
Ⅰ. 초고왕계의 재등장
Ⅱ. 비류왕의 왕권 강화 추진
Ⅲ. 왕위 계승권 확립과 부의 해체
제2장 근초고왕의 중앙집권체제 정비와 정복 활동
Ⅰ. 통치조직의 정비
Ⅱ. 유교정치이념의 수용
Ⅲ. 군사동원체제의 개편과 영역 확대
Ⅳ. 평양성 전투의 승리와 동진과의 교섭
제4부 한성도읍기 지배 세력의 변천
제1장 부여씨 왕실과 진씨 왕비족 중심 체제
Ⅰ. 왕비족 진씨의 등장과 그 활동
Ⅱ. 불교 공인을 둘러싼 왕실의 갈등과 진씨 세력
Ⅲ. 고구려와의 대결과 진씨 세력
Ⅳ. 부여씨 왕실과 진씨 왕비족 중심의 정치 운영의 특징
제2장 진씨와 해씨의 세력 교체
Ⅰ. 전지왕의 즉위
Ⅱ. 지배 세력의 교체
제3장 목만치의 천권과 해씨 세력의 재부상
Ⅰ. 구이신왕의 즉위와 목만치의 천권
Ⅱ. 비유왕의 즉위와 해씨 세력의 재부상
제4장 개로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실패
Ⅰ. 개로왕 초기 실권귀족 중심의 정치 운영
Ⅱ. 개로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문주의 등용
Ⅲ. 개로왕의 정책 실패와 한성 함락
제5부 웅진 천도와 신진 세력의 등장
제1장 웅진 천도와 남래 귀족의 동향
Ⅰ. 문주왕의 즉위와 웅진 천도
Ⅱ. 남래 귀족의 분열과 반란
제2장 신진 세력의 등장
Ⅰ. 동성왕의 즉위와 진씨 세력의 재부상
Ⅱ. 동성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신진 세력의 등용
제3장 왕권의 안정과 갱위강국 선언
Ⅰ. 무령왕의 출계와 즉위
Ⅱ. 왕권 강화와 국제적 위상 고양
Ⅲ. 웅진도읍기의 역사적 의미
제6부 사비 천도와 대성팔족
제1장 사비 천도와 22부 중심 체제
Ⅰ. 사비 천도와 국호 개칭
Ⅱ. 통치조직의 정비와 22부 중심의 정치 운영
Ⅲ. 국가 제의 체계와 불교 교단의 정비
제2장 한강 유역의 상실과 관산성 대회전
Ⅰ. 삼국 연합군의 형성과 한강 유역의 회복
Ⅱ.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과 관산성 대회전
제3장 대성팔족의 대두와 6좌평 중심의 정치 운영
Ⅰ. 위덕왕의 즉위와 대성팔족의 대두
Ⅱ. 6좌평 중심의 정치 운영
Ⅲ. 위덕왕과 법왕의 개혁 정치
제7부 익산 경영과 미륵사
제1장 무왕의 즉위와 왕비들
Ⅰ. 무왕의 즉위
Ⅱ. 무왕의 왕비들
제2장 무왕의 익산 경영과 사탁씨 왕후의 ‘무육만민’
Ⅰ. 익산 경영
Ⅱ. 전륜성왕 추구와 미륵사 창건
Ⅲ. 무왕의 정치적 한계
제8부 백제의 멸망과 부흥백제국
제1장 의자왕 대의 정치
Ⅰ. 의자왕의 즉위와 친위정변의 단행
Ⅱ. 왕권 강화 추진과 대외정책
Ⅲ. 정치의 혼란과 황음탐락
제2장 백제의 멸망
Ⅰ. 동아시아의 정세와 나당동맹의 결성
Ⅱ. 멸망의 징후와 백제의 멸망
제3장 부흥백제국
Ⅰ. 백제국의 부활
Ⅱ. 부흥백제국의 멸망과 역사적 의미
맺는 글
1. 대왕과 폐하
2. 천하관
3. 9층·7층 목탑의 건립과 일통삼한의식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온조의 건국 시기는 국가 발전 단계와 연동해서 보아야 한다. 한국고대사회에서 국가 발전 단계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읍락 단계-국 단계-국 연맹 단계-부체제 단계-중앙집권국가 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발전 단계론에 입각해 보면 국 단계부터 건국으로 볼 수 있다. 국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방국邦國의 칭호도 없고 군신의 칭호도 없이 추장만 있었지만 국이 성립하면서부터 왕과 신하와 백성이 있고 일정한 범위를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십제국의 건국 시기는 『삼국사기』의 기사처럼 기원 전후한 시기로 보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축조된 3세기 중후반은 부체제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 ‘제1부 건국과 성장’ 중에서
이후 백제는 국호를 십제국에서 백제국伯濟國으로 고쳤다. 국호 개칭 시기로 주목되는 것이 2세기 중반경이다. 이 시기에 십제국은 미추홀 세력을 대신하여 지역연맹체의 맹주국이 되었으며, 중국 군현에 맞설 정도로 국력이 성장하였다. 이에 십제국은 성장한 국력에 걸맞게 국호를 십제국에서 백제국으로 개칭한 것 같다. 그 시기는 초고왕 대(166~214)에 해당된다.
백제국伯濟國으로 국호가 개칭되면서 국호의 의미도 새로 부여되었다.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백성들이 즐거이 따른다는 백성낙종[百姓樂從]’이다. 이 국호에는 ‘백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민에 대한 지배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중략)
백제국百濟國으로 국호 표기를 확정하면서 이 국호에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백가제해百家濟海’이다. 백가百家는 지배층을 구성한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변 세력을 정복하거나 흡수하여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해濟海’는 바다를 잘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백제는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의 강조는 백제의 해양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 ‘제1부 건국과 성장’ 중에서
백제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역연맹체를 구성하였던 국들은 독자성을 잃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국의 수장의 일부는 중앙귀족으로 편제되었다. 중앙귀족의 수는 영역이 확대되면 될수록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중앙귀족들을 편제한 것이 지배자 집단으로서의 부部이다. 이 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가 운영된 체제를 부체제라고 한다. (중략)
저자는 부체제의 성립 시기와 관련하여 일련의 국가체제 정비가 이루어진 고이왕 후반경을 주목하고자 한다. 고이왕은 목지국을 멸망시키고 주변의 여러 국들을 통합한 후 통합된 지역의 국의 수장들을 중앙귀족으로 전화轉化시켜 집권력을 강화였다. 그리고 중앙귀족으로 전화된 세력들을 편제하기 위해 고이왕은 27년(260)과 28년(261)에 좌평과 솔계, 덕계 관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조직을 새로이 설치하였다. 이 토대 위에서 고이왕은 부체제를 성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 ‘제2부 집권력 강화와 부체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