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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4112150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12-08-0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신문철 박사(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장) / 5
역자서문 / 7
서론: 자성의 시간
크레이그 G. 바돌로뮤(Craig G. Bartholomew, Cheltenham) / 13
기고자 소개 / 19
제1장 복음주의 신학과 미래
앨리스터 E.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 Oxford) / 25
제2장 복음주의와 교회: 복음의 동반자
케빈 J. 밴후저(Kevin J. Vanhoozer, Chicago) / 57
제3장 복음주의와 성경 해석
I. 하워드 마샬(I. Howard Marshall, Aberdeen) / 133
제4장 복음주의와 성경신학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Sydney) / 163
제5장 선교의 미래적 동향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 London) / 193
제6장 복음주의와 윤리
로빈 패리(Robin Parry, Worcester) / 213
]
제7장 기독교 세계관과 복음주의의 미래
크레이그 G. 바돌로뮤(Craig G. Bartholomew, Cheltenham) / 251
제8장 복음주의 영성
유진 H. 피터슨(Eugene H. Peterson, Vancouver) / 285
제9장 복음주의와 철학
그레고리 J. 라우리(Gregory J. Laughery, Lausanne) / 321
제10장_A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영국)
나이젤 스코트랜드(Nigel Scotland, Cheltenham) / 353
제10장_B 북미와 전 세계의 오순절
조나단 루스벤(Jonathan Ruthven, Virginia Beach) / 393
제11장 복음주의와 정치
스티븐 라자러스(Stephen Lazarus, Washington, DC) / 411
책속에서
잘 문서화되어 있는 바와 같이, 실제로 복음주의는 지난 20세기 후반부 동안 큰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복음주의는 현재 ‘서양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활동적으로 헌신적인 기독교의 한 유형’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성장은 복음주의 스스로 문제점을 초래했으며, 그로 인해 서구의 복음주의가 현재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복음주의의 현재 상태와 미래에 대한 그렌즈(Stanley Grenz)의 최근 평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시작했다. “복음주의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적어도 이러한 평가는 오늘날의 많은 복음주의적 동향 조사자들, 예측가들 그리고 예언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기로는 서양 문화가 현재 겪고 있는―소위 ‘후현대성’(postmodernity)의 도전―변화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어느 것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즉 인식론에 관련하여―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 때, 복음주의의 어떤 유형은 후현대성보다는 현대성에 더 근접한다. 20세기 동안 복음주의자들은 후현대주의의 단편성과 다원성을 가지고 문화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으며, 그 단편성은 또한 복음주의의 특성을 밝혀주고 있다.
신학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제안은 결코 신학의 지적 고결함을 손상시키지 는다. 신학에 적합한 감정적 요소들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음악(예를 들어, 바하[J.S. Bach]의 수난곡 합창)과 미술(예를 들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의 예수 수난 그림)은 신학에 어울리는 적합한 감정적 요소를 묻는 질문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교부시대와 종교개혁 시기에 지적되었던 유사한 우려를 반복하면서 신앙생활에 음악과 미술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바르게 사용한다면 음악과 미술은 은혜의 수단으로 보여 질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역에 집중하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나아가 믿음의 자질을 심화시켜주는데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단순한 교회학과 단순한 복음주의는 함께 나란히 간다. 각각은 복음주의자들을 자주 분열시키는 부차적인 문제보다 오히려 근본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단순한’이라는 용어를 ‘사소한’이라는 뜻 보다는 C. S. 루이스처럼 본질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복음의 진리와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자신과 함께 교제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대한 약속과 부르심을 회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교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