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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4112549
· 쪽수 : 552쪽
· 출판일 : 2012-12-31
책 소개
목차
추천사 1 (김의원 박사, 백석대학교 대학원 학사부총장) / 5
추천사 2 (마크 차발라즈, 테리 W. 에딩어, W. 리 험프리즈) / 7
머리말 / 9
서문 / 12
역자서문 / 14
유물사진목록 / 16
약어표 / 19
기고자 / 20
시리아-팔레스타인 고고학적 연대 / 22
고대 근동 지도 / 23
1부 메소포타미아
1장 수메르인 / 월터 R. 보딘 / 27
2장 바빌로니아인 / 빌 T. 아놀드 / 61
3장 아시리아인 / 윌리엄 C. 괄트니 / 107
4장 페르시아인 / 에드윈 M. 야마우치 / 151
2부 아나톨리아, 시리아-팔레스타인, 이집트
5장 히타이트인 / 해리 A. 호프너 / 181
6장 가나안인과 아모리인 / 키이스 N. 스코빌 / 225
7장 페니키아인 / 윌리엄 A. 워드 / 263
8장 아람인 / 웨인 T. 피타드 / 299
9장 블레셋인 / 데이빗 M. 하워드 / 333
10장 이집트인 / 제임스 K. 호프마이어 / 363
3부 트랜스 요르단
11장 암몬인 / 랜돌 W. 영커 / 425
12장 모압인 / 제랄드 L. 매팅리 / 459
13장 에돔인 / 케네스 G. 호글런드 / 483
성경 색인 / 501
저자 색인 / 509
주제 색인 / 523
리뷰
책속에서
수메르인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성경에서 그들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고대 근동학의 각 분야는 자체의 정당성을 지닌, 연구할 가치가 있는 학문으로서 그 독자성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아시리아학(Assyriology,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과 셈 족 연구에서 사용되는 용어)에서도 해당되지만 고대 근동문명 연구를 진전시킨 주된 동인(動因) 중 하나가 히브리 성경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수메르인이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상대적 요인은 이미 알려진 고대 세계(또는 어떤 시기)의 언어와 그들의 언어가 무관하다는 것이다. 셈어, 더 넓게는 아시아-아프리카어(Afroasiatic) 그리고 히타이트어와 고대 페르시아어의 경우에도 인도-유럽어와 비교언어연구를 하는 것은 한 언어의 연구를 통해 또 다른 고대 근동 언어로 연결되지만 수메르어 연구는 아카드어(Akkadian)를 설명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2)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전히 수메르어 자체의 연구와 관련된 고도의 모호성이 될 것이다. 지금도 가장 이른 초기문헌의 상당부분은 언어 역사상 나타난 몇몇 양상과 같이 해독이 불가능하다. 이 모든 문제에 더하여, 한 민족으로서 수메르인의 존재 자체가 19세기 말엽에서야 겨우 확인되었다
20세기로 진입할 즈음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나온 방대한 양의 새로운 정보가 집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학자들은 성경 문서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당황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로 인해 모든 사상들이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했으며 서쪽으로 이동했다고 가정하는 “범-바빌로니아주의”(pan-Babylonianism)로 넘어갔다.105) 이런 접근법을 포기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몇몇 학자들은 아직도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 간의 개념적이고 문화
적인 연속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106) 이스라엘과 그 이웃들이 공통의 문화를 지녔지만 각각은 거기에서부터 서로 다르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보다 균형잡힌 접근법이 생겨난다. 그래서 성경의 홍수 이
야기는 “길가메쉬 서사시”와는 형태와 내용에서도 구별된 유사성을 보여준다. 또한 그 사건은 구약성경에서 전혀 다른 해석으로 설명된다.107) 바빌로니아인은 3천년기의 수메르-아카드 문화를 개조하여 전파하였다. 구, 신-바빌로니아 시대 동안의 전례 없는 그들의 정치적 중요성 때문에 이 문화적 유산은 고대 근동에서 셈 족의 공통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은 솔직히 그 문화적 저장고의 주류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들의 유산과 얼마만큼 다른지는 온전히 탐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그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다리우스는 무게와 도량형을 표준화하고 주화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시글로이(sigloi)로 알려진 은화와 유명한 금화 다릭(darics).36) 그가 취한 여러 경제조치들 때문에 다리우스는 헬라인들에게 행상인으로 평판이 났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3:89), “바로 이렇게 공물을 결정하는 것과 또 법령과 같은 다른 이유로 인하여 페르시아인은 다리우스를 행상인, 캄비세스를 주인, 고레스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다리우스는 모든 것에서 사소한 이윤을 챙기고 캄비세스는 거칠고 오만하며 고레스는 자비롭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