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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34932291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08-11-0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떠나간 마음
2. 모래 소리를 들으며
3. 인도의 시인
4. 자기 암시
5. 우리 집 맴돌기
6. 사과를 생각하고 바나나를 하기
7. 참담한 저녁 식사
8. 마음의 혼돈
9. 참된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10. 보거나 혹은 듣거나
11. 뭔가 타고 있다
12. 의심의 메아리
13. 소리로 꿈꾸기
14. 은하는 별들이 모인 곳
15. 재킷을 입은 미소년
16. 침묵 밑에
17. 얼마나 더 있을까
18. 톱니바퀴
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
도브는 여전히 사물을 가리키지도 못하고 고갯짓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도 못하는 언어장애 중증 자폐아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이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도브의 짧은 인생 내내, 나는 아이를 변화시켜 병을 고치겠다는 결심을 내비칠 때마다 늘 비현실적이고 파괴적인 몽상가 취급을 받았다. 다들 도브에게 가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아이에게서 그 어떤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고. 아이가 정신지체아라고. 괜히 애를 위한답시고 부질없는 짓에 매달리다가 우리의 결혼생활과 나머지 애들의 삶까지 망치지 말라고. 도브는 태어날 때부터 삶의 희망이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테니, 가능한 한 빨리 현실에 적응하는 편이 낫다고. 그게 다른 사람은 물론이요 도브에게도 옳은 일이라고.
하지만 티토와의 만남은 도브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도 남들과 똑같은 마음, 느낌, 생각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다들 그건 말도 안 되는 모순이라고 비웃었지만, 나는 그런 모순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며, 적어도 그 가능성만은 믿게 되었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티토가 중증 자폐아이면서도 놀라운 지능을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쉬쉬하면서 나 같은 부모들에게 티토는 ‘백만 명 중에 하나’가 틀림없으니 우리 애들에게도 그런 지능이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티토가 모든 자폐증 요건에 부합한다면, 어째서 우리가 희망을 가져선 안 된단 말인가? 티토는 우리 아이들도 지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언젠가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증거.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과 부모님은 늘 당황하고 걱정한다. 의사들은 저마다 다른 의학용어로 나를 설명한다. 왜 그럴까.”
“나는 자폐아 판정을 받았어요. 그 임상 심리학자가 엄마 아빠한테 해주던 말이 지금도 기억나요. 내가 왜 그런지, 앞으로 어찌 해야 하는지. 그때 내가 슬펐을까요? 아니면 행복했을까요? 모르겠어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난생처음 나한테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섰어요. 몇 가지 답을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나를 에워싼 질문에 대한 답들. ‘얘는 왜 말을 안 하지?’ ‘왜 저렇게 손을 떨어?’ ‘왜 다른 애들과 놀지 않는 거야?’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할 말이 생겼어요.
‘자폐아거든.’ 아주 간단하죠. 나는 그 대답 때문에 아주 편해졌어요. 하지만 아빠의 표정이 우울해지고 엄마의 노래가 사라지자 걱정스러워졌어요. ‘자폐아가 되는 건 옳지 못한 건가?’ 그때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자폐아 티토의 일기' 중에서
하루는 술집에서 돌아온 아빠가 잡지 하나를 식탁에 놓았어요.
아빠는 몹시 우울한 얼굴로 엄마한테 말했어요. ‘읽어봐.’
그 잡지를 읽은 엄마는 나의 대화 능력을 놓고 아빠와 말다툼을 했어요.
나는 그 잡지에 나와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챘어요.
대체 그 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자폐증에 관한 절망적인 기사였을 거예요.
나는 깨달았어요.
아빠가 더 이상 나의 대화를 믿지 않는다는 걸.
나는 깨달았어요.
자폐증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걸.
나는 깨달았어요.
대화를 한다고 으쓱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요.
그 후로 엄마는 ‘자폐증에 관한 글을 거들떠보지도 않기’ 시작했어요.
‘자폐증에 관해서는 내 아들한테 배우면 되니까
의사 나부랭이의 말은 듣지 않겠어요.’ 엄마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요.
엄마는 나와 엄마 자신을 믿었어요.
굳게 결심한 엄마는 좀더 속도를 높여 꾸준히 나를 가르쳤어요.
‘길이 없으면 만들면 돼.’ - '자폐아 티토의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