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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영국사
· ISBN : 9788934956891
· 쪽수 : 672쪽
책 소개
목차
서문
프롤로그
제1부 구조
1장 다민족 국가, 영국의 탄생
1. 잉글랜드
2. 스코틀랜드
3. 웨일스
4. 아일랜드
5. 브리튼의 기억과 통합
2장 영국인의 정체성
1. 영국민의 성립
2. 사람들의 교류
3. 잉글랜드 중심주의와 켈트 변두리
4. 이중적 정체성
5. 영국적인 것의 해체?
3장 통치제도
1. 왕실
2. 의회
3. 정당제도
4. 수상과 행정부
4장 제국
1. 영국의 성격과 팽창
2. 영국의 제국정책과 인도
3. 제국주의에 대한 반응과 선전
4. 제국의 경제적 수익성
5. 제국의 해체
5장 개혁가들
1. 제러미 벤담과 공리주의
2. 존 스튜어트 밀과 자유주의
3. 월리엄 모리스와 무정부적 사회주의
4. 시드니 웨브, 비어트리스 웨브와 페이비언 사회주의
6장 지주와 중간계급
1. 지주층과 자본주의의 발달
2. 영국 자본주의의 성격
3. 중간계급의 성격과 역할
4. 영국 경제의 쇠퇴에 대한 논란
5. 오늘날의 계급
7장 노동계급
1. 19세기 노동계급
2. 20세기 전반기의 노동계급
3. 1945년 이후의 노동계급 : ‘영국병’의 원인인가?
8장 미래를 향하여
1. 북아일랜드 문제
2. 유럽 통합과 영국
3. 경제부흥: ‘영국병’의 극복과 대처주의
제2부 시간
1장 여명 : 로마ㆍ앵글로색슨 시대
1. 로마 이전 시대
2. 로마 시대(기원전 55~기원후 410)
3. 초기 앵글로색슨 시대(410~871)
4. 후기 앵글로색슨 시대(871~1066)
5. 앵글로색슨인의 사회
2장 태동 : 중세
1. 중세 전기 : 노르만과 앙주 제국
2. 중세 중기 : 대귀족 시대(1189~1327)
3. 중세 후기(1327~1485)
4. 의회의 발달
5. 중세 잉글랜드 사회
3장 도약 : 튜더 시대
1. 헨리 7세(1485~1509)
2. 헨리 8세(1509~1547)
3. 에드워드 6세(1547~1553)와 메리 여왕(1553~1558)
4.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5. 사회경제적 상황
6. 국민국가의 발달
4장 혁명 : 스튜어트 시대
1. 스튜어트 왕조 전기
2. 내전ㆍ혁명
3. 복고 왕정
4. 명예혁명과 의회주권
5. 사회경제적 변화
6. 스튜어트 왕조 말기
5장 성숙 : 긴 18세기
1. 조지 1세(1714~1727), 조지 2세(1727~1760), 조지 3세(1760~1820)
2. 사회경제적 변화
3. 저항의 정치
4. 이데올로기의 탄생
5. 산업혁명
6. 대프랑스 전쟁과 아일랜드의 통합
6장 황금기 : 1815~1870
1. 산업사회로의 이동
2. 사회계급
3. 1815년 이후의 개혁정치와 계급정치
4. 자유주의
5.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관
6. 보수당과 자유당의 발달
7. 대외정책
7장 조락 : 1870~1914
1. 자유당과 보수당의 각축
2. 자유주의의 변화
3. 사회주의의 발흥
4. 제국과 대외정책
5. 3당 정치의 대두
6. 사회경제적 변화
8장 교차로에서 : 1914~
1.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전후 정계
2. 전후의 영국경제
3. 1930년대 보수당 정부와 전쟁의 접근
4. 합의의 시대
5. 갈등과 쇠퇴의 시대
6. 대처 시대
7. 토니 블레어와 신노동당
부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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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1880년대 이후 매스미디어의 발달도 왕실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을 도왔다. 황색언론이 등장하여 왕실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보이게 했으며, 철도의 확장과 자동차의 증가는 왕실의 교통수단인 마차에 ‘낭만적인 황홀함’을 부여했다. 1876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여제가 된 후 영국 왕실의 의식은 제국의 의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영국은 전 세계로부터 도전받기 시작했고 국제적 경쟁이 첨예해진 시기였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를 숨기기 위해서 오히려 왕실의식의 강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촉진된 국제경쟁은 수도를 대규모로 재건하는 일에서도 나타났다.
디즈레일리가 “왕관에 박힌 보석jewel in the imperial crown”이라고 부른 인도는 영제국의 꽃이었다.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인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제국이었고, 영국인들도 인도를 다른 식민지와는 다르게 생각했다. 인도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인 1600년 특허장을 받은 동인도회사가 시작한 사기업의 상업적 동기에서 생겨난 산물이었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에 침투하기 시작한 17세기는 무굴제국의 전성기였지만, 아우랑제브의 사망(1707) 이후 와해되기 시작했다. 동인도회사는 무굴제국과 관계를 맺고 교역권을 얻었는데, 제국의 지배권이 인도 전역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지방통치자들과 교섭하는 한편 네덜란드, 포르투갈 및 프랑스와의 경쟁을 통해서 결국 18세기 중엽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 역사가는 헨리를 “멋지고, 당당하고, 낭비가 심하고, 호색적이고, 게으르고, 시기심이 많고, 교활하고, 탐욕스럽고, 어리석을 정도로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그는 세 가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군사적인 것으로서 그는 최신 발명품인 대포나 포탄 등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헨리의 두 번째 관심은 신학이었는데, 개신교를 비방하는 글을 써서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옹호자’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의 세 번째 열정의 대상은 여성이었다. 그는 그칠 줄 모르는 욕정으로 여자들을 추구했는데, 그의 욕망에 비하면 6명의 왕비는 수가 너무 적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