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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6425333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6-03-25
책 소개
“조용하게, 강으로, 그러다 흐르라”
섬진강을 따라 흘러온
김용택 시세계의 새로운 도약!
한없이 무르익은 서정이 선사하는
생동하는 아름다움, 경이로운 성찰
깨끗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자연의 정취와 순정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한국 서정시를 대표해온 김용택 시인의 신작 시집 『그날의 초록빛』이 창비시선 533번으로 출간되었다. 섬진강에서 발원한 시인의 시세계가 흘러온 지 44년, 오랜 세월의 무게만큼 언어는 더욱 충만해지고 사유는 한층 깊어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기나긴 시력(詩歷)이 증명하듯 한결 무르익은 시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날의 초록빛』은 노년의 원숙한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 감정과 사유가 교차하는 ‘시적인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일상의 풍경에 숨겨진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무도 모르는 생명들”의 “신비로운 약속”(시인의 말)을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나직나직 들려주는 시집이다. 단순히 감미로운 서정을 넘어 삶과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심오한 통찰과 철학적 사유가 깃든 시편들이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시인 김용택이 평생에 걸쳐 구축해온 서정의 세계가 이제는 완숙을 넘어 진경에 이르렀음을, 그의 문학이 여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이번 시집을 통해 온 힘으로 증명한다.
“가을을 기다리면 가을이 온다
나는 주로 시를 기다린다“
담백한 고백에 아늑하게 서려 있는 삶의 철학
김용택의 시는 대체로 간결하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행간에는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오랜 세월 자연과 교감해온 시인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농축되어 있다. “건너뛰지 않은 자연의 생산은 아름답고/인간의 수확은 일일이 한알 한알 겸손이다”라는 통찰에서 알 수 있듯 특유의 담백하고 명쾌한 어조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재의 근원을 향한 깊은 응시가 서려 있다. “가을을 기다리면 가을이 온다/나는 주로 시를 기다린다”(「나는 그 일이 그렇게 좋다」)는 고백처럼 시인은 세계를 조급하게 해석하기보다 차분한 기다림 속에서 겸손하게 따르는 순응의 미학을 일깨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존중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조용하게, 강으로, 그러다 흐르라」)는 전언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시인의 사유는 더욱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전율에는/핵심이 없다/(…)/그 누구도/거기 가/닿지 못했다”(「핵심의 전율」)라는 말은 세계의 본질에 닿을 수 없는 인식의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내지만, 시인은 이를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물들은 모두 서로 충동질하고” “다채로운 파문을 일으켜/파장을 넘어 파도치”는 것처럼 세계는 끊임없는 관계와 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 흐름 가운데 “어떤 생각의 파동 후의 감정을 기록하려”(「파동 후를 보러 갈까요」) 한다. 찰나의 감정들을 초록빛 생명의 언어에 담아내어 일상의 사소한 변화와 미세한 떨림 속에서 사랑의 본질과 삶의 진리를 길어 올리려는 태도가 눈부시다.
완고한 균열을 파고드는
사소하고 부드러운 것에 대하여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김용택 시인이 스스로 구축해온 서정의 틀과 “고정된 관념의 문법”(「산책, 문장, 내 휴지통」)에서 탈피하려는 의지이다. 그는 “인간 혁명이 사라질 것 같은/공허한 인문과 ‘87 체제 문법’의 그 지루한 서정이/싫어졌어”(「시적인 순간에서 사적인 순간으로」)라고 고백하며 과거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밝힌다. “나는 퀴퀴하게 낡은 나의 거울에서 나간다”라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한 다짐에서는 자기갱신을 향한 결연한 의지마저 읽힌다. 시인은 기존의 시적인 틀을 해체하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다른 생각’ ‘다른 언어’를 탐색한다. “시는 전체(全體)다”(「산책, 문장, 내 휴지통」)라는 선언은 이러한 시적 전환이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와 세계를 포괄적으로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비로소 “인류의 질문과 대답이 인류에게 달라질 때가 되었”(「산책, 문장, 내 휴지통」)음을 밝히며 낡은 시대의 문법을 넘어 새로운 생명의 윤리를 수립하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류가 구축한 체제의 “완고한 결정을 깨뜨리고 균열을 파고드는” 것은 강력하고 폭압적인 무기가 아니라 “부드러운 결정체들”(나희덕 시인, 추천사)이다. 이슬방울의 무게만큼 휘어질지언정 “무게의 힘에 지지 않”(「생명들의 약속」)는 풀잎이나 “시시때때로 명랑하게 폭발하고 비행”(「지성, 그 이전의 시간들」)하는 꽃처럼 순하고 여린 존재들이 완루한 세계에 파고들어 균열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그 틈에서 생동하는 힘과 경이로운 생명력을 섬세하고 고운 언어로 포착하여 독자에게 전한다. “봄은 먼저 와 있”고 “풀에 눈이 앉”(「아슬아슬했던 분노」)을 뿐이라는 깨달음이 유달리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다.
“물결들이 다정할 때
그때도 나는 여기 서서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곧 여든을 바라보는 김용택 시인은 여전히 견결한 시정신을 가다듬으며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간다. “섬진강을 따라 오롯이 흘러”와 “이제 지구의 드넓은 대지”(추천사)에 이른 노시인의 시적 여정은 한국 서정시의 한 지평을 다져온 발자취를 증명한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의 뜻대로 된 것은 없”으며,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진입했다”(「시를 읽는 시간」)고 말하며 여전히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날의 초록빛』의 책장을 덮으며 독자들은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던 다정한 약속” 같은 풍경과 “어둠을 따르며 살아나던 생명들의 신비로운/속삭임”과 “식지 않을/사랑의 아픔들”(「그 악속의 탄생」)이 서린 “훼손되지 않을 견고한 시의 아름다운 나라”(「내 시로 삼고 싶은 남의 시」)를 가슴속에 오래도록 품게 될 것이다.
목차
제1부 감정의 존중
결정
그 약속의 탄생
달을 보면서
이슬과 새의 무게와 그 시적인 순간에 대한 필연적 관계 설명
핵심의 전율
그날의 초록빛
감정의 존중
사랑이 결국을 사랑하는 이유
내 시로 삼고 싶은 남의 시
시적인 순간에서 사적인 순간으로
정해진 얼굴은 없어요
여보! 이이가 아침 식사 전이라 하네
별이 사라지는 순서
취소된 배고픔
제2부 파동이 사는 강기슭
시의 시
고졸(古拙)한 경제행위
사흘 동안
바람의 행방
뒤로 묶은 머리
파동 후를 보러 갈까요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좋다
산책, 문장, 내 휴지통
터무니없이 괴이한 이 생각은 내일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이튿날 아침
제3부 산모퉁이 양지쪽
산모퉁이 양지쪽
함박눈
그리고 노란 봄이 또 왔네
지금도 희망과 절망이 다정한 이웃인가
아슬아슬했던 분노
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 시크한 가을바람
시를 읽는 시간
이슬의 여인
도중(途中)
제4부 이 신비로운 약속들
바람 위에 누운 나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은 없었던 걸로 하지요
조용하게, 강으로, 그러다 흐르라
이마가 쉬는 곳
푸른 강
이 순정 다할 때까지
생명들의 약속
풀잎 아기
지성, 그 이전의 시간들
나무가 서 있다
시인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 지면 나는 당신이 오실 길에 나가요
마을 앞을 지나가는 바람에게
사랑이 온다는 말을 날마다 전해 들었어요
작은 돌멩이들의 아픈 자극을 받으며
맨발로도 올 수 있어요
(…)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던 다정한 약속같이 오고 있는
어느 저녁이
내 고단한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그 손길로 다정한 아침을 가져다주었거든요
―「그 약속의 탄생」 부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그녀가 이렇게 말했어요
어머!
그러면
키스해줘요
―「감정의 존중」 전문
어떤 이와 앞산 뒷산 오래된 나무처럼 마주 보고 의미 있게 웃으며
홀가분한 얼굴을 주고받았다
그리하여 외로움이 삭정이가 되어가고
부러움을 덜어낸 청빈의 하늘이 되어간다
산이 저렇게 좋다 처음이다
처음이다 산이 저렇게 좋아한다
―「고졸(古拙)한 경제행위」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