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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8432
· 쪽수 : 300쪽
책 소개
목차
자본주의의 적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검은 방
아하 달
애틀랜타 힙스터
엄마를 찾는 처연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
계급의 완성
존재의 증명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해설 정홍수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기 자본주의의 진정한 적이 있다. 사회주의자였던 내 부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 부모는 팔십년대의 일부 운동권 같은 이론적 혹은 추상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카빈소총을 들고 지리산을 날아다녔던, 자본주의와 실전을 치른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난 이래로 그들이 자본주의에 맞서 무엇을 한 적은 없다. 길고 긴 겨울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본주의의 생생한 적이었던 자신들의 젊은 날을그립게 회상하는 정도? 그러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왕년의 사회주의자쯤 되겠다.
―「자본주의의 적」
그날 밤 백피디는 제 한계를 넘었고, 모두 기분 좋게 흥건히 취했다. 거기까지였으면 나름 아름다운 밤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손님 대접할 찬거리를 사러 읍내에 다녀오던 그녀는 동네 입구에서 기함을 했다. 비뚤비뚤한 나무를 이어 붙여 만든 조잡한 입간판에 떡하니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누가 볼세라 차를 세우고 입간판을 뽑기 시작하는데, 젠장, 타다다다, 옆집 아주머니가 타는 낡은 오토바이 엔진이 뚝 멈추는 것이었다. 입간판은 어찌나 깊이 박아놨는지 용을 써도 잘 빠지지 않았다.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창문을 블라인드78로 가려도 빛은 어디론가 새어든다. 강 건너 도로를 질주하는 차 소리가 잦아들고 사위가 적막에 감싸이기 시작하면 빛의 자리를 어둠이 슬금슬금 잠식한다. 그제야 아흔아홉해 혹사당한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돈다. 어둠의 가운데 놓여 있을 때 그녀의 몸도 비로소 이완된다. 수십년 버텨오는 동안 생겨난 장롱의 흠집이나 가구 사이사이 뭉친 먼지 같은 것들도 이제는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고, 제 흔적마저 까맣게 지워, 검은 방에는 오직 그녀와 어둠뿐이다.
―「검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