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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8975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3-01-20
책 소개
목차
볼셰비키가 왔다
태의 열매
악당에 관하여
헤드라이너
바크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
오토바이의 묘
굿바이 레인보우
해설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선뜻 실내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나 역시 그들을 들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들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성은 남자 셋 여자 하나였다. 그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는 흠잡을 데 없는 스킨헤드였다. 스킨헤드는 중세 스칸디나비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텁석부리였으며 키가 작고 몸이 단단해 보였다. 또다른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30대를 넘길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다. 먹칠한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성하고 둥근 머리모양이었던 것이다.
―「볼셰비키가 왔다」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알죠. 잘 알죠.”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알 것 같았으니까. 이상한 얘기였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할 수 있다니. 나는 내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이유로 증오했다. 지금이라면 말해도 좋지 않을까. 오늘 술자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끄집어내고 싶었던 본심을,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장황하게 역행해도 서두조차 꺼내지 못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좋을까.
―「태의 열매」
“보이, 이 곡을 좋아하나?”
스킨헤드가 물었다. 로니는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뭇매를 맞은 직후였기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했다. 누군가 로니의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다. 말보로 레드였다. 역시나. 그것은 로커의 담배였고 로니 역시 말보로 레드를 피웠다. 로니는 깊숙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방금까지 폭격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만 들리던 귓속으로 에디의 기타 솔로가 파고들었다. 로니는 피떡이 된 눈을 억지로 뜨고 달 가까운 곳으로 승천하는 리프트를 바라보았다. 멋지군. 내가 원하던 광경이야.
“방금 좋아졌습니다.”
스킨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그는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그 소리가 로니에게는 또렷했다.
“이제 마저 맞자.”
―「헤드라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