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스타트라인 (작가들의 빛나는 시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41610654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6-18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41610654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6-18
책 소개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는 젊은 작가 여덟 명의 첫 소설집 가운데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한 편씩 묶은 『스타트라인』을 펴낸다. 개성 강한 신인 작가들의 등장으로 한국문학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오가는 요즘, 문학동네는 젊은 작가들의 빛나는 성취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신인 작가들의 빛나는 단편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는 젊은 작가 여덟 명의 첫 소설집 가운데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한 편씩 묶은 『스타트라인』을 펴낸다. 개성 강한 신인 작가들의 등장으로 한국문학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오가는 요즘, 문학동네는 젊은 작가들의 빛나는 성취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스타트라인』에는 지난해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신동엽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커다란 호응을 얻은 김기태, 특유의 솔직한 문체와 담백한 유머로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는 김지연, 타인의 마음이라는 영원한 미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김화진, 최근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로 뜨겁게 주목받으며 세대와 세태에 대한 고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성해나, 데뷔 삼 년 만에 이효석문학상,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석권하며 문단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예소연, 차갑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을 소설화하는 위수정, 어떤 누구와도 구분되는 특유의 신랄한 화법과 과감한 형식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이미상,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소설 안으로 끌어옴으로써 새로운 예술사를 펼쳐내는 전하영, 이 여덟 작가의 시작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 한데 모였다.이번 소설집은 독자들에게 젊은 한국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이다.
★
김기태, 「전조등」_사회의 규범을 따라 모난 데 없는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담아낸다. 자신이 세운 철칙에 의해 ‘자기답게’ 살아오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이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일들을 하고, 삶의 규칙들을 수정해나가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삶의 궤적을 수없이 수정해가야 하는 우리의 삶과 꼭 닮아 있다.
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김지연, 「내가 울기 시작할 때」_한 인물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산뜻한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은 어찌 보면 한없이 무거운 주제이지만 김지연의 인물은 “나는 여전히 삶에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고 말하며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줌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삶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김화진, 「근육의 모양」_자신이 ‘해본 것’의 목록을 열심히 꾸려가는 ‘재인’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하지 않고 필라테스와 담배, 양다리와 절교, 투병과 파혼까지 모두 ‘해본 것’의 목록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삶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경험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성해나, 「OK, Boomer」_미묘한 세대 갈등을 겪는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전교조 소속의 진보적인 교사인 아버지는 스스로 젊은이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아들이 자신의 밴드 동료들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의 자부심은 결국 힘없이 무너진다. 성해나는 앞 세대와 다음 세대를 막연한 이해의 시작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단호하게 선이 그어진 두 세대의 모습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픽.
끓는 냄비 안에서 부풀고 부풀다 터지는 만두처럼 픽, 단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애들은 여전히 폭소하고, 아들은 연신 바지를 추켜올리고. 저게 밀레니얼이구나. 나를 향해 쏟아지는 화면 속 무수하고 끊임없는 하트를 보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거 아니다…… 니들 정말 그러는 거 아냐.
예소연, 「우리 철봉 하자」_크로스핏 센터에서 만나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는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다. 두 사람은 한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는데, 이 과정에서 크게 다투기도 하고 서먹하게 지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역경을 지나 더욱 끈끈한 친구로 거듭난다. 철봉 훈련을 하듯 조금씩 관계의 근력을 키워가는 이들의 우정이 긴 여운을 남긴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내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몇몇 남자와 원나잇을 했고 늘 그랬듯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위수정, 「풍경과 사랑」_남편이 출장을 떠나고 아들과 함께 지내던 ‘나’의 집에 아들의 친구인 ‘연호’가 방문하며 시작된다. ‘나’는 또래보다 성숙하고 다부진 몸을 가진 연호에게 부적절한 감정을 느끼는데…… 최근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섹슈얼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애들은 내가 바본 줄 알아요. 한국말 잘 못하고. ……그러면 바보 같으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연호는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연호의 오른쪽 눈은 왼쪽보다 조금 작았다. 묘한 비대칭을 이루는 얼굴. 순한 눈동자와 언뜻언뜻 비치는 그 안의 공허. 나는 왜 그걸 알아볼 수 있었을까.
이미상, 「그친구」_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부부 ‘김’과 ‘규’의 이야기이다. 규는 남편인 김이 같은 모임의 일원인 ‘지경’과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가 보기에 지경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독특한 인물인데, 소설은 같은 여성 운동권 인물로서 규가 지경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며 남성적 시선으로 그려져온 운동권 문학을 여성 인물의 시점에서 다시금 써낸다.
규의 상상은 거기서 멈춘다. 와이프일 리 없지. 남편이라면 자신을 결코 와이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운동권 남자들은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니까.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동지의 대체어로서의 그친구. 그렇게 부르는 한 자신은 아직 젊고, 아직 투사니까.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_‘할머니’로 불리고 싶지 않은 중년여성 숙희가 등장한다. 중년여성으로 분류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친구 ‘윤미’는 딸이 아이를 낳아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 소설은 할머니가 되는 것도, 되지 않는 것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숙희의 고민을 너무 무겁지 않은 농도로 풀어놓는다.
어느 평화로운 주말, 수영장에 갔다가 그 옆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계산할 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 직후 숙희를 흘끔 보더니 포스기에 ‘중년 여성’이라 쓰인 견출지가 붙은 버튼을 탁, 하고 내리쳤던 것이었다. 그 버튼 옆으로는 ‘젊은 여성’ ‘노인 여성’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만족스러운 문장을 적은 소설가가 그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위해 경쾌하게 엔터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고 무의식적이기 그지없는 손짓에 의해 숙희는 중년 여성이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는 젊은 작가 여덟 명의 첫 소설집 가운데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한 편씩 묶은 『스타트라인』을 펴낸다. 개성 강한 신인 작가들의 등장으로 한국문학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오가는 요즘, 문학동네는 젊은 작가들의 빛나는 성취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스타트라인』에는 지난해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신동엽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커다란 호응을 얻은 김기태, 특유의 솔직한 문체와 담백한 유머로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는 김지연, 타인의 마음이라는 영원한 미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김화진, 최근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로 뜨겁게 주목받으며 세대와 세태에 대한 고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성해나, 데뷔 삼 년 만에 이효석문학상,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석권하며 문단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예소연, 차갑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을 소설화하는 위수정, 어떤 누구와도 구분되는 특유의 신랄한 화법과 과감한 형식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이미상,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소설 안으로 끌어옴으로써 새로운 예술사를 펼쳐내는 전하영, 이 여덟 작가의 시작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 한데 모였다.이번 소설집은 독자들에게 젊은 한국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이다.
★
김기태, 「전조등」_사회의 규범을 따라 모난 데 없는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담아낸다. 자신이 세운 철칙에 의해 ‘자기답게’ 살아오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이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일들을 하고, 삶의 규칙들을 수정해나가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삶의 궤적을 수없이 수정해가야 하는 우리의 삶과 꼭 닮아 있다.
그는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뭐냐고!”라고 소리내보고 큭큭 웃었다. 그것 또한 언젠가 본 드라마 주인공을 흉내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큭큭 웃었다. 그리고 자기다운 게 뭔지 생각하다 자기답게 사는 게 지겨워졌다.
김지연, 「내가 울기 시작할 때」_한 인물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산뜻한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은 어찌 보면 한없이 무거운 주제이지만 김지연의 인물은 “나는 여전히 삶에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고 말하며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줌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삶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김화진, 「근육의 모양」_자신이 ‘해본 것’의 목록을 열심히 꾸려가는 ‘재인’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하지 않고 필라테스와 담배, 양다리와 절교, 투병과 파혼까지 모두 ‘해본 것’의 목록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삶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경험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성해나, 「OK, Boomer」_미묘한 세대 갈등을 겪는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전교조 소속의 진보적인 교사인 아버지는 스스로 젊은이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아들이 자신의 밴드 동료들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의 자부심은 결국 힘없이 무너진다. 성해나는 앞 세대와 다음 세대를 막연한 이해의 시작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단호하게 선이 그어진 두 세대의 모습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픽.
끓는 냄비 안에서 부풀고 부풀다 터지는 만두처럼 픽, 단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애들은 여전히 폭소하고, 아들은 연신 바지를 추켜올리고. 저게 밀레니얼이구나. 나를 향해 쏟아지는 화면 속 무수하고 끊임없는 하트를 보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거 아니다…… 니들 정말 그러는 거 아냐.
예소연, 「우리 철봉 하자」_크로스핏 센터에서 만나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는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다. 두 사람은 한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는데, 이 과정에서 크게 다투기도 하고 서먹하게 지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역경을 지나 더욱 끈끈한 친구로 거듭난다. 철봉 훈련을 하듯 조금씩 관계의 근력을 키워가는 이들의 우정이 긴 여운을 남긴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내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몇몇 남자와 원나잇을 했고 늘 그랬듯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위수정, 「풍경과 사랑」_남편이 출장을 떠나고 아들과 함께 지내던 ‘나’의 집에 아들의 친구인 ‘연호’가 방문하며 시작된다. ‘나’는 또래보다 성숙하고 다부진 몸을 가진 연호에게 부적절한 감정을 느끼는데…… 최근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섹슈얼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애들은 내가 바본 줄 알아요. 한국말 잘 못하고. ……그러면 바보 같으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연호는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연호의 오른쪽 눈은 왼쪽보다 조금 작았다. 묘한 비대칭을 이루는 얼굴. 순한 눈동자와 언뜻언뜻 비치는 그 안의 공허. 나는 왜 그걸 알아볼 수 있었을까.
이미상, 「그친구」_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부부 ‘김’과 ‘규’의 이야기이다. 규는 남편인 김이 같은 모임의 일원인 ‘지경’과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가 보기에 지경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독특한 인물인데, 소설은 같은 여성 운동권 인물로서 규가 지경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며 남성적 시선으로 그려져온 운동권 문학을 여성 인물의 시점에서 다시금 써낸다.
규의 상상은 거기서 멈춘다. 와이프일 리 없지. 남편이라면 자신을 결코 와이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운동권 남자들은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니까.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동지의 대체어로서의 그친구. 그렇게 부르는 한 자신은 아직 젊고, 아직 투사니까.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_‘할머니’로 불리고 싶지 않은 중년여성 숙희가 등장한다. 중년여성으로 분류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친구 ‘윤미’는 딸이 아이를 낳아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 소설은 할머니가 되는 것도, 되지 않는 것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숙희의 고민을 너무 무겁지 않은 농도로 풀어놓는다.
어느 평화로운 주말, 수영장에 갔다가 그 옆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계산할 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 직후 숙희를 흘끔 보더니 포스기에 ‘중년 여성’이라 쓰인 견출지가 붙은 버튼을 탁, 하고 내리쳤던 것이었다. 그 버튼 옆으로는 ‘젊은 여성’ ‘노인 여성’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만족스러운 문장을 적은 소설가가 그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위해 경쾌하게 엔터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고 무의식적이기 그지없는 손짓에 의해 숙희는 중년 여성이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목차
김기태 전조등
김지연 내가 울기 시작할 때
김화진 근육의 모양
성해나 OK, Boomer
예소연 우리 철봉 하자
위수정 풍경과 사랑
이미상 그친구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저자소개
추천도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
분야의 신간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