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170
· 쪽수 : 336쪽
책 소개
목차
연수
펀펀 페스티벌
공모
라이딩 크루
동계올림픽
미라와 라라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운전면허학원의 바랜 개나리색 차, 그 구질구질한 시트에 앉기만 하면 나는 처음 겪는 세계에 홀로 내던져진 아이처럼 초조해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상식적인 생활 감각이 강제로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액셀을 너무 밟거나 덜 밟았고, 비상등과 깜빡이 켜는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후방주차를 하겠다고 핸들을 바쁘게 돌리면서 후진과 전진을 반복했지만 결국 똑같은 궤적만 몇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기어를 R에 놓는 순간부터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서 그랬다. 나는 머릿속에서 차의 이미지를 반전시켰다가 다시 반전시키기를 반복하다 어느 게 원본인지 알수 없는 상태로 액셀을 또, 지나치게 세게 밟고, 주차선 뒤편 화단에 한쪽 뒷바퀴를 걸친 채로 강사한테 혼이 났다.
―「연수」 부분
이찬휘는 앉자마자 A4용지를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서 바닥에 내려놓더니 ‘조장’이라고 적힌 빈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선, 조장을 정해야겠는데요?”
그러고는 조원들을 좌로, 우로 한번씩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조장이 하고 싶은 분?”
아마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때 이미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반질반질한 얼굴 옆으로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채 스윽 올리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바로 그애가 조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펀펀 페스티벌」 부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애의 집 근처 카페에서 그애를 기다렸다. 천의 얼굴에서 이차
를 마치면 내가 늘 택시로 내려주고 손을 흔들던 곳이었다. 너희 집 근처 그 카페야. 이제 퇴사도 했으니까 한번만 툭 터놓고 만나주지 않을래? 기다릴게. 그애가 나타났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맹세컨대 나는 연애하면서도 이런 추태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 미안…… 내가 같이 잘하고 싶었던 친구들이 다 떠나니까…… 속상해서…… 그냥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혹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는 없을까…… 그애, 한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차장님, 저 차장님은 정말 좋았어요. 반대 방향인데도 늘 택시 같이 타고 저 먼저 여기 내려주신 것도 고마웠어요. 차장님…… 저, 전문직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거기서는 미래가 안 보였어요……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니. 네 미래가 될 수 없었던 내가 죄송하지.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공모」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