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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이이 (도학의 쇄신과 안민의 길)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209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6-02-20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209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6-02-20
책 소개
창비 한국사상선 제7권 『이이: 도학의 쇄신과 안민의 길』은 율곡 이이(1536~84)의 대표 선집인 『율곡전서(栗谷全書)』의 글 중 일부를 엄선하여 편역한 것이다. 이이의 성리학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현명한 지침을 건네줄 뿐 아니라 사회 구동과 국가 통치의 원리를 일깨워준다.
공동체의 부조리와 무너진 기틀을 고민하다
정통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의 진실을 택한 율곡의 진면목
창비 한국사상선 제7권 『이이: 도학의 쇄신과 안민의 길』은 율곡 이이(1536~84)의 대표 선집인 『율곡전서(栗谷全書)』의 글 중 일부를 엄선하여 편역한 것이다. 이이는 한국인들에게 무척 익숙한 인물로, 조선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신사임당의 아들, 그리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외교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책의 편자 김경호는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가 어쩌면 “활자로 박제된 율곡 이이”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지 되묻는다. 김경호는 이 책을 엮은 의의에 대해 “율곡 사상과 인간적 면모에 덧씌워진, 때로는 축소되고 때로는 증폭된 근대적/식민적 해석의 잔해를 걷어내는 작업”이며 “이이의 진면목을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 다시 세워, 온전하고 정당한 위상을 되찾아주는 정명의 기획”임을 밝힌다(13면).
지금 왜 ‘율곡 사상’을 다시 불러내 재해석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바로 조선 중기 이이가 펼친 사유가 시공을 넘어, 현대에도 여전히 보편적 가치를 발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이의 성리학은 백성들의 삶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하여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고자 한 보편철학으로서, 인간 개개인의 삶에 현명한 지침을 건네줄 뿐 아니라 사회 구동과 국가 통치의 원리를 일깨워준다.
대학자 이이의 굴곡진 지적 여정이 알려주는 것
이이는 1536년 강릉에서 태어나 어려서 신사임당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13세 이후로 여러 과거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스물아홉살까지 총 아홉차례 장원을 거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던 천재였다. 조선조 명종과 선조 대에는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편자는 이이의 생애사에서 그동안 강릉과 파주 시절만 주로 다루는 경향이 남북 분단 이후 율곡 사상을 다소 편협하게 보게 된 원인이었다며, 이이가 밟아온 지적 여정을 좀더 다채롭게 살필 것을 당부한다. 특히 이이가 처가살이를 한 경북 성주 시절(1557~60년)에 다양한 학자들과 만나며 시야를 넓힌 것과 그가 살아생전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지내며 여러 글을 발표하고 후학을 양성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이는 1551년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뒤 생과 사의 경계를 고민하다가 불교를 접하고 금강산으로 향한다. 그의 입산은 단순히 불교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당대 조선 학술계의 학문을 살피며 또다른 지적인 토양을 찾아 떠난 여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이에게 산수(山水)는 진락(眞樂)을 찾을 수 있는 진리처”였고 “이이의 출산(出山)은 이전과는 다른 삶의 지향과 지표를 모색하는 과정”(19면)이었다.
공직자로서 치열한 갈등을 겪으며 이이는 자신이 평생 품어온 존재론적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 방황하여 불교에 귀의했던 사실을 왕에게 토로했다.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대유학자의 진정성은 율곡 사상의 낯설면서도 신선한 단면이다. 한때 이이는 외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내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효(孝)와 충(忠) 사이의 고뇌는 자신의 인생 내내 ‘선택’과 ‘책임’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와중에 이이가 결연히 판단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쇠퇴하는 조선에 필요한 실질적인 변화의 방안
이이는 유교 윤리를 자신의 현장, 즉 집안과 가족에서 구현해내며 이를 자신의 공적 헌신과 시대적 소명 완수로 연결 짓는 ‘현장형 지식인’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실(務實)과 경장(更張)은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백성들의 일상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한 이론이 응축된 말들이다. 이로써 이이가 종국에 바란 바는 안민(安民)과 화평(和平)이었다.
1581년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이이는 “우리나라는 건국한 지 거의 2백년이라, 이는 중쇠(中衰)의 시기”(138면)라고 과감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 개국 당시에 선언한 왕도정치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보았고, 그 큰 걸림돌인 간신들의 국정농단을 단죄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 곳곳에는 간신들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안타깝게 배어 있다.
이이는 거대한 이론과 국가적 책략만이 쇠퇴기 조선을 재정비하는 방안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 시스템이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인간관계’에서, 즉 가족과 이웃에서 재건된다고 보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돕는 행동들은 그저 소박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부조리한 구질서를 타파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래를 튼튼히 다져놓으면 국가와 사회가 무너질 리 없다는 진단이다.
인륜을 따르는 것과 더불어 이이가 국가 체제 재건에서 강조한 덕목이 ‘경장’와 ‘무실’이다. 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다시〔更〕 맨다〔張〕는 뜻으로 ‘낡고 썩어가는 큰 집’인 조선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또한 명분보다는 실질적인〔實〕 변화에 힘쓰는〔務〕 ‘무실’을 강조하며, 이이는 세금 개혁과 행정 효율, 민생 구제의 대책을 연이어 내놓는다. 이이가 변방의 국경을 돌아보며 지형과 군사 정보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군대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이 같은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개혁정신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이의 이기론, 철학과 현실의 공존을 추구한 고도의 통찰
이이는 자신의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쏟아냈는데, 특히 쇠퇴기에 접어든 조선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지를 논하는 대목은 주목을 요한다. 당대의 성리학을 관념 논쟁의 도구로만 쓰려는 세태를 거꾸로 뒤집어, 이이는 이 도학(道學)을 통해 정의를 바로잡고 국가 체제를 보완하며, 인적 자산을 기르고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했다. 그는 선조에게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직책인 ‘경제사’를 설치하자고 제안하며, 붕괴 직전인 국가 체제를 다시 설계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국가에 복무할 인력을 양성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취지에서 향약을 체계화했다.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이 같은 열망을 보면, 이이가 16세기 조선의 이기론이 추상적인 논의에만 그치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당대의 도학이 추상적인 관념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가장 적절한 지침을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추상적인 이기론을 현실의 작동 원리로 전환하여 이를 실천적인 철학으로 재설계하고자 했다. “원칙〔理〕은 어디에나 통하는 보편성을 지니지만, 그것이 담기는 그릇〔氣〕은 현실적인 국한을 가진다”라는 이통기국의 논점을 통해 보편적 원칙과 특수한 현실을 포괄하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이 같은 이이의 이기론은 역으로 중국으로 전해져 당대 중국 유학과 대등하게 논의된다.
살아생전 쉼 없이 ‘경장’과 ‘무실’을 외치던 이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조정의 신하들을 비롯한 조선 양반계층의 갈등과 대립이었다. 이이는 당장 국가를 일으켜 세울 당사자인 선비들이 붕당이라는 정파적 갈등에 소모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죽은 뒤 “이조판서 이이가 세상을 떠났다”(324면)라는 단 한줄의 기록만 남겼던 것도 당시 사림 간 갈등이 만든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이의 충의와 학문적 성과는 이 같은 당파 싸움을 넘어 조선의 도덕적 정통성을 지탱하는 학술적 결과물로서 재평가받는다. 더 나아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로부터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잘 이해한 인물’ ‘국가 체제의 혁신을 위한 설계자’로서 추앙받기에 이른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정통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의 진실을 택한 율곡의 진면목
창비 한국사상선 제7권 『이이: 도학의 쇄신과 안민의 길』은 율곡 이이(1536~84)의 대표 선집인 『율곡전서(栗谷全書)』의 글 중 일부를 엄선하여 편역한 것이다. 이이는 한국인들에게 무척 익숙한 인물로, 조선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신사임당의 아들, 그리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외교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책의 편자 김경호는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가 어쩌면 “활자로 박제된 율곡 이이”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지 되묻는다. 김경호는 이 책을 엮은 의의에 대해 “율곡 사상과 인간적 면모에 덧씌워진, 때로는 축소되고 때로는 증폭된 근대적/식민적 해석의 잔해를 걷어내는 작업”이며 “이이의 진면목을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 다시 세워, 온전하고 정당한 위상을 되찾아주는 정명의 기획”임을 밝힌다(13면).
지금 왜 ‘율곡 사상’을 다시 불러내 재해석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바로 조선 중기 이이가 펼친 사유가 시공을 넘어, 현대에도 여전히 보편적 가치를 발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이의 성리학은 백성들의 삶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하여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고자 한 보편철학으로서, 인간 개개인의 삶에 현명한 지침을 건네줄 뿐 아니라 사회 구동과 국가 통치의 원리를 일깨워준다.
대학자 이이의 굴곡진 지적 여정이 알려주는 것
이이는 1536년 강릉에서 태어나 어려서 신사임당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13세 이후로 여러 과거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스물아홉살까지 총 아홉차례 장원을 거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던 천재였다. 조선조 명종과 선조 대에는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편자는 이이의 생애사에서 그동안 강릉과 파주 시절만 주로 다루는 경향이 남북 분단 이후 율곡 사상을 다소 편협하게 보게 된 원인이었다며, 이이가 밟아온 지적 여정을 좀더 다채롭게 살필 것을 당부한다. 특히 이이가 처가살이를 한 경북 성주 시절(1557~60년)에 다양한 학자들과 만나며 시야를 넓힌 것과 그가 살아생전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지내며 여러 글을 발표하고 후학을 양성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이는 1551년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뒤 생과 사의 경계를 고민하다가 불교를 접하고 금강산으로 향한다. 그의 입산은 단순히 불교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당대 조선 학술계의 학문을 살피며 또다른 지적인 토양을 찾아 떠난 여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이에게 산수(山水)는 진락(眞樂)을 찾을 수 있는 진리처”였고 “이이의 출산(出山)은 이전과는 다른 삶의 지향과 지표를 모색하는 과정”(19면)이었다.
공직자로서 치열한 갈등을 겪으며 이이는 자신이 평생 품어온 존재론적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 방황하여 불교에 귀의했던 사실을 왕에게 토로했다.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대유학자의 진정성은 율곡 사상의 낯설면서도 신선한 단면이다. 한때 이이는 외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내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효(孝)와 충(忠) 사이의 고뇌는 자신의 인생 내내 ‘선택’과 ‘책임’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와중에 이이가 결연히 판단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쇠퇴하는 조선에 필요한 실질적인 변화의 방안
이이는 유교 윤리를 자신의 현장, 즉 집안과 가족에서 구현해내며 이를 자신의 공적 헌신과 시대적 소명 완수로 연결 짓는 ‘현장형 지식인’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실(務實)과 경장(更張)은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백성들의 일상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한 이론이 응축된 말들이다. 이로써 이이가 종국에 바란 바는 안민(安民)과 화평(和平)이었다.
1581년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이이는 “우리나라는 건국한 지 거의 2백년이라, 이는 중쇠(中衰)의 시기”(138면)라고 과감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 개국 당시에 선언한 왕도정치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보았고, 그 큰 걸림돌인 간신들의 국정농단을 단죄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 곳곳에는 간신들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안타깝게 배어 있다.
이이는 거대한 이론과 국가적 책략만이 쇠퇴기 조선을 재정비하는 방안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 시스템이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인간관계’에서, 즉 가족과 이웃에서 재건된다고 보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돕는 행동들은 그저 소박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부조리한 구질서를 타파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래를 튼튼히 다져놓으면 국가와 사회가 무너질 리 없다는 진단이다.
인륜을 따르는 것과 더불어 이이가 국가 체제 재건에서 강조한 덕목이 ‘경장’와 ‘무실’이다. 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다시〔更〕 맨다〔張〕는 뜻으로 ‘낡고 썩어가는 큰 집’인 조선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또한 명분보다는 실질적인〔實〕 변화에 힘쓰는〔務〕 ‘무실’을 강조하며, 이이는 세금 개혁과 행정 효율, 민생 구제의 대책을 연이어 내놓는다. 이이가 변방의 국경을 돌아보며 지형과 군사 정보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군대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이 같은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개혁정신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이의 이기론, 철학과 현실의 공존을 추구한 고도의 통찰
이이는 자신의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쏟아냈는데, 특히 쇠퇴기에 접어든 조선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지를 논하는 대목은 주목을 요한다. 당대의 성리학을 관념 논쟁의 도구로만 쓰려는 세태를 거꾸로 뒤집어, 이이는 이 도학(道學)을 통해 정의를 바로잡고 국가 체제를 보완하며, 인적 자산을 기르고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했다. 그는 선조에게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직책인 ‘경제사’를 설치하자고 제안하며, 붕괴 직전인 국가 체제를 다시 설계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국가에 복무할 인력을 양성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취지에서 향약을 체계화했다.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이 같은 열망을 보면, 이이가 16세기 조선의 이기론이 추상적인 논의에만 그치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당대의 도학이 추상적인 관념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가장 적절한 지침을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추상적인 이기론을 현실의 작동 원리로 전환하여 이를 실천적인 철학으로 재설계하고자 했다. “원칙〔理〕은 어디에나 통하는 보편성을 지니지만, 그것이 담기는 그릇〔氣〕은 현실적인 국한을 가진다”라는 이통기국의 논점을 통해 보편적 원칙과 특수한 현실을 포괄하는 지혜를 제시한 것이다. 이 같은 이이의 이기론은 역으로 중국으로 전해져 당대 중국 유학과 대등하게 논의된다.
살아생전 쉼 없이 ‘경장’과 ‘무실’을 외치던 이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조정의 신하들을 비롯한 조선 양반계층의 갈등과 대립이었다. 이이는 당장 국가를 일으켜 세울 당사자인 선비들이 붕당이라는 정파적 갈등에 소모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죽은 뒤 “이조판서 이이가 세상을 떠났다”(324면)라는 단 한줄의 기록만 남겼던 것도 당시 사림 간 갈등이 만든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이의 충의와 학문적 성과는 이 같은 당파 싸움을 넘어 조선의 도덕적 정통성을 지탱하는 학술적 결과물로서 재평가받는다. 더 나아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로부터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잘 이해한 인물’ ‘국가 체제의 혁신을 위한 설계자’로서 추앙받기에 이른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조선 유학의 갱신과 전환
핵심저작
1장 율곡: 사상의 기저
2장 유산: 어제의 세계
3장 경계: 사유의 풍경
4장 재건: 도학의 진흥
5장 혁신: 시대의 급무
6장 전환: 이학의 재구성
7장 성학: 수기 안민의 길
8장 전승: 이이의 뒤안길
이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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