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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어느 시인의 초상_ 유종호(문학평론가)

어떤 길로 어떻게 걸어 여주로 갔는지도 별로 그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한 군데, 어떤 산을 지나는데 형이 불타는 것 같은 단풍을 보고 산 이름을 묻던 게 언뜻 떠오를 뿐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한 대답은 기억의 재생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야 떠올랐다.
"여기가 바로 황해도 구월산이다." - 본문 41쪽 중에서

"꽃이 임금을 위해 피고, 새가 스승의 은혜를 기려 울던가? 구름이 다스리는 자의 잘못에 따라 일고 비가 다스림 받는 자의 원망에 따라 내리던가? 노을이 의를 위하여 곱고 달이 예를 위해 밝던가? 꽃 지는 봄날의 쓸쓸함이 오직 나라 위한 근심에서이고, 잎 지는 가을밤의 서글픔은 오직 어버이를 애통히 여김에선가?" - 본문 98쪽 중에서

'결국 원명대는 열아홉의 설익은 나이와 무골의 단순함으로 홍경래의 대의를 원래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휘황하게 받아들였으며, 다시 수십 년 외곬으로 갈고닦아 마침 찾아온 나에게 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원명대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할아버지를 이해한 듯하다.' - 본문 191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