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38205124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11-03-15
책 소개
목차
제1장 이방인의 죽음
제2장 원한의 낙인
제3장 수수께끼의 키워드
제4장 불륜의 추적
제5장 저변(底邊)에서의 탈출
제6장 실종의 혈흔
제7장 단절(斷絶)의 질주(疾走)
제8장 과거를 잇는 다리
제9장 잊지 못할 산속의 여관(1)
제10장 잊지 못할 산속의 여관(2)
제11장 도구의 반역
제12장 추억의 어머니
제13장 멀고 외진 마을
제14장 훔쳐낸 증거
제15장 거대한 감옥
제16장 용서받지 못할 동기
제17장 떨어진 눈(目)
제18장 인간의 증명
후기
리뷰
책속에서
그 남자가 탔을 때 누구 하나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곳에서는 이방인인 그도 특별히 시선을 끄는 존재는 아니었다.
흑인이기는 하나 살결이 아주 검은 편은 아니었다. 검다기보다는 갈색에 가까웠다. 머리칼은 검고, 심한 고수머리는 아니다. 얼굴 생김새도 흑인이라기보다는 동양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키는 흑인치고는 작은 편이다. 나이는 20대쯤에다 단단하고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은 철 이른 긴 바바리코트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지 그는 아주 무거운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한 무리의 사람들 중 가장 뒤에 처져서 올라탔다.
……
“손님 여러분, 여기가 스카이 다이닝입니다.”
엘리베이터 안내양이 우아한 목소리로 말하고 손님을 배웅했다. 손님들은 호화로운 위용의 다이닝룸으로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엘리베이터 안은 비었다. 아니, 한 사람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벽에 기댄 채로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으로 탄 바바리코트의 흑인이다. 눈을 감고 있었다.
“손님.”
엘리베이터 안내양이 불러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선 채 잠이 들었는가 싶었던 안내양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다른 손님들에게 가려져서 몰랐는데, 태도가 수상하다. 피부가 갈색이라 얼굴색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표정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포커페이스의 무표정과는 다른 죽음의 얼굴 같았다.
이때 비로소 그녀는 그 남자가 전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인 것을 깨달았다. 걸치고 있는 바바리코트는 때가 묻어 검게 반들거리고 있었다. 소매며 옷자락은 닳아서 해어지고, 여기저기에 진흙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치올려 깎은 머리도 먼지투성이고, 기름기 없이 바싹 마른 피부에 아무렇게나 자란 짙은 수염이 시선을 끈다. 코트 밑의 가슴께를 감싸듯이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봐야 우아한 저녁을 즐기려고 온 사람의 매무새는 아니었다.
―틀림없이 잘못 올라탄 걸 거야―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이런 사람이 섞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 남자는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모양이군.
엘리베이터 안내양은 생각을 바꾸고, 식당 앞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손님에게, “내려갑니다.” 하고 안내 말을 하려고 했다.
바바리 코트의 남자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남자는 등을 엘리베이터 벽에 기댄 채로 스르르 무릎을 꺾었다. 마치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엘리베이터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는 상체가 앞으로 푹 꺾이고 말았다.
갑자기 자기 발 앞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안내양은 조그만 비명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곧 자신의 직무가 생각나서, “손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면서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이때 그녀는 남가가 가벼운 빈혈이라도 일으킨 정도로만 생각했다. 불과 28초에 150m나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가끔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를 부축하려는 순간에 지금까지는 코트에 가려져 있었던 가슴께가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간 붉은색이 그녀의 망막에서 갑자기 퍼진 듯이 느껴졌다. 동시에 지금까지 남자가 서 있었던 발밑의 베이지색 양탄자가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