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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137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13-12-16
책 소개
목차
1부
눈인사|이슬비 이용법|구직|변명(辨明), 멸치|가로하늘타기|은적운(隱寂韻) 7|은적운(隱寂韻) 13|깊은 산속 옹달샘|사람의 일[人事]|틈|수색 지나며|꽃푼수|소리 너머|외출(外出)|장전항을 떠나며
2부
농사금지복|출향(出鄕)|이명(耳鳴)|환생|미인 예찬|한 소식|은적운(隱寂韻) 10|추석 차례|문병일지|담장 ㅤㅁㅜㄶ허지기 전|담장 ㅤㅁㅜㄶ허지다|수면제|정중한 부탁|저 들판 작은 교회
3부
쉰 살의 맨손체조|훔쳐온 돌|뼈 주무르는 다리|아열대 지대의 온대인|초봄|팔꿈치 세상 1|팔꿈치 세상 2|자전거 도둑|광화문의 야생마|소망|하나마나한 결의|공기잔치|복면강도|노래|차나 한 잔
4부
은적운(隱寂韻) 12|줄잡기|발 맛|집단농성|겨울 몽골 초원에서|사랑의 채무|철 지난 반성문|오동나무 곁에서|조장(潮葬)은 어떨까|고무신 술꾼|통영에서|비켜서서 혹은 멀리 서서|내 안의 흑백다방|봄날, 남산|재생
해설 황현산|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시
환생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老母
옛 기억이 되살아나시는지 밥 안치는 일을 자청하신다
손목 아래로 빚어지는 정겨운 리듬
썩썩 써스럭, 써-억 써억 썩
바가지가 요란해진다
쏟아지는 수돗물이 시원타며 손등이 웃고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진다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식구들의 사발에 깨끼밥도 푸고
때로 고봉밥 꾹꾹 눌러 펐으리라
떨어지는 밥알은 손으로 주워드시면서
“엄니, 다시 시집가도 되겠네, 쌀 씻는 소리 들응게”
“야 좀 봐라, 못 허는 소리가 없네, 떼-엑!”
수면제
어떤 이는 나에게 효자라 말하고
어떻게 삼 년 동안 혼자 어머니를 모시냐고 궁금해하지만
나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웃는다
여동생도 삼 년이나 모셨고
나는 이제 조금 모시고 살뿐이며
실은 내가 모시는 게 아니고
어머니에게 개인지도 받는다는 것
순간순간 온몸으로 깨우쳐주시는 가르침 받고 있는 것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우렁각시보다 더 요긴한
기막힌 처방전 하나 지니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육 년쯤 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발한 행동은 줄였지만
이따금 한마디씩 깨우쳐주시는 재미가 있고
어머니의 놀라운 상상력에 내 션찮은 상상력은 늘 어리둥절한다
부축하며 걸어도 주간보호센터 선생님들이 있고
학교에서 돌아오실 시간엔
하이코 우리 어머니 오셨네 큰소리로 모시면 된다
저녁밥을 천천히 대화하며 나누어 먹고
일회용 팬티 바꾸어드린 뒤
치카치카 양치를 하면 하루가 끝나는 것
한발 한발 서서히 침대에 안내하고
아직 정신이 있는 어머니께 비장의 수면제를 드린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네요 어머니 학교 갔다 오시고 밥도 먹고 야쿠르트로 입가심도 했고 약도 먹었네요 양치도 하고 팬티도 갈아입었으니 오늘은 다 끝났네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제 편안히 주무세요 저는 제방으로 가서 이제 공부 좀 하려고요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평생 장남 일에 안 된다는 말 한 번 안 하신 어머니
내가 교회고 절이라고 하셨던 어머니
공부해야 한다는 말엔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믿는 어머니
‘공부해야 돼요’라는 말은
그래서 가끔 힘들면 사용하는
우리 어머니 최고의 수면제
은적운(隱寂韻) 12
붕어들이 서로 꿀붙으려다 미끄러져 수초 옆을 지나는 소리
수염밖에 별 자랑 없는 메기란 놈 으스대는 소리
빠가사리란 놈 쓸데없이 폼 잡으며 허리 돌리는 소리
그것들 조용하게 굽어보며
언제 덥석 물 것인가 궁리하는 가물치 운산하는 소리
그 아래께
어리연꽃 발가락에 물든 황토물 씻기는 소리
하하 웃음 지며 허공에 발 뻗으며 자라란 놈 떠가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