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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151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4-01-17
책 소개
목차
이것은 펄럭이는 한 마리의 시
드니 라방의 산책로|혁명은 한 마리의 감정|애도 일기|애도 일기|애도 일기|정선, 오슬로, 가수리|아랍말처럼|감정의 고독|아주 멀리 도시 속으로 말을 타고 달아나기|녹색 순환선|애도 일기|다락방|톰 웨이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서푼짜리 시|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혁명의 달 두루마리 결사|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마지막 인사|토리노의 말
그것은 애도의 대상
루르 마랭|갱신|파르동, 파르동 박정대|야만인의 사투리|카페 아바나|산타클라라 |노동절 산책|武川|南蠻|토성의 영향 아래|감정 노동|여기는 낡았고, 여기는 새로우며/여기는 더 이상 그곳이 아니다|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붉은 스웨터를 입은 기타|나전 장렬|시|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저것은 무한의 바람
☆|정선|겨울 복대|눈빛
발문 강정|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시
애도 일기
빛이 슬픔에 닿자 장마가 끝났다
이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애도의 방식, 장마가 끝나자 애도 일기가 시작되었다
한 마리 태풍이 꿈틀거리며 올라올 때 잔다리 위구르족 마을에서는 양 몸통에 커다란 막대기를 끼운 채 양 통구이를 만들고
여인네는 달군 화덕에 반죽을 붙여 낭을 굽고 허브 차와 호두로 저녁을 준비하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국수를 즐겨 먹는 위구르족은 소금만으로 간을 한 국수에 허브로 만든 양념장을 넣고 담백하고 조촐한 저녁을 먹지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떨어진 후 밤 열시쯤 저녁을 먹는다네
한 마리 태풍이 꿈틀거리며 올라올 때 어떤 위구르 가족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카펫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별빛처럼 반짝이는 삶을 나누네
위구르족의 수염은 양의 수염
양의 생애가 끝나자 수염의 생애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고독이 출렁거리는 슬픔에 닿자 저녁이 되었다
고독의 라마단은 그때부터 시작되므로 태풍이 몰려오는 밤의 한가운데 앉아 누군가 종교처럼 술을 마시지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애도의 방식
한 마리 태풍이 꿈틀거리며 올라올 때 인류의 마지막 열차처럼 덜컹거리는 건물의 이 층 창가에 앉아 미친 듯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지
태풍이 몰려오는 검은 밤에는 흑맥주를 마시자
지금은 한 마리 태풍이 꿈틀거리며 거대한 고독 곁을 지나가는 자정
저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애도의 한 방식
수염이 돋아난 천사가 인류의 마지막 이 층 창가에 앉아 여전히 중얼거린다
이것은 밤새 태풍에 펄럭이는 한 마리 시
그것은 애도의 대상
저것은 송강호의 염소수염
톰 웨이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
아픈 왼쪽 허리를 낡은 의자에 기대며 네 노래를 듣는 좌파적 저녁
기억하는지 톰, 그때 우리는 눈 내리는 북구의 밤 항구 도시에서 술을 마셨지
검은 밤의 틈으로 눈발이 쏟아져 피아노 건반 같던 도시의 뒷골목에서 톰, 너는 바람 냄새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지
집시들이 다 그 술집으로 몰려 왔던가
네 목소리엔 집시의 피가 흘렀지, 오랜 세월 길 위를 떠돈 자의 바람 같은 목소리
북구의 밤은 깊고 추워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노래를 듣던 사람도 모두 부랑자 같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아 모든 걸 꿈꿀 수 있는 자발적 은둔자였지
생의 바깥이라면 그 어디든 떠돌았지
시간의 문틈 사이로 보이던 또 다른 생의 시간, 루이 아말렉은 심야의 축구 경기를 보며 소리를 질렀고 올리비에 뒤랑스는 술에 취해 하염없이 문밖을 쳐다보았지
삶이란 원래 그런 것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며 노래나 부르는 것
부랑과 유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삶과 생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모르지만 두고 온 시간만은 추억의 선반 위에 고스란히 쌓여 있겠지
죽음이 매 순간 삶을 관통하던 그 거리에서 늦게라도 친구들은 술집으로 모여들었지
양아치 탐정 파올로 그로쏘는 검은 코트 차림으로 왔고 콧수염의 제왕 장 드 파는 콧수염을 휘날리며 왔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시였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내면도 시였지
기억하는지 톰, 밤새 가벼운 생들처럼 눈발 하염없이 휘날리던 그날 밤 가장 서럽게 노래 불렀던 것이 너였다는 것을
죽음이 관통하는 삶의 거리에서 그래도 우리는 죽은 자를 추모하며 죽도록 술을 마셨지
밤새 눈이 내리고 거리의 추위도 눈발에 묻혀갈 즈음 파올로의 작은 손전등 앞에 모인 우리가 밤새 찾으려 했던 것은 생의 어떤 실마리였을까
맥주 가게와 담배 가게를 다 지나면 아직 야근 중인 공장 불빛이 빛나고 다락방에서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빛 아래서 누군가 끙끙거리며 생의 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지
누군가는 아프게 생을 밀고 가는데 우리는 하염없이 밤을 탕진해도 되는 걸까 생각을 하면 두려웠지 두려워서 추웠지 그래서 동이 틀 때까지 너의 노래를 따라 불렀지
기억하는지 톰, 그때 내리던 눈발 여전히 내 방 창문을 적시며 아직도 내리는데 공장의 불빛은 꺼지고 다락방의 등잔불도 이제는 서서히 꺼져 가는데 아무도 선언하지 않는 삶의 자유
끓어오르는 자정의 혁명, 고양이들만 울고 있지
그러니까 톰, 그때처럼 노래를 불러줘, 떼 지어 몰려오는 눈발 속에서도 앙칼지게 타오르는 불꽃의 노래를
그러니까 톰, 지금은 아픈 왼쪽 허리를 낡은 의자에 기대며 네 노래를 듣는 좌파적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