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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42391035
· 쪽수 : 412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면서 ● 4
화보 ● 11
제1편 서경덕 평전 ● 17
1. 서경덕의 일생 ● 18
1) 16세기 중후반 개성문화의 새바람_18 /2) 서경덕의 가계家系와 조상의 직업_24 /3) 서경덕 3대조의 품행과 염원_29 /4) 서경덕의 어머니와 아내_31 /5) 두 아우의 도술道術을 걱정하다_36 /6) 소년기에 종달새가 나는 것을 관찰하다_42 /7) 개성 성균관을 거쳐 4서3경을 독학으로 배우다_43 /8) 19세에 장가들고, 과거 준비와 학문 연구를 병행하다_47 /9) 34세: 변산, 지리산, 속리산, 금강산 등 명승지를 유람하다_50 /10) 황해도 여러 지역을 유람하다_62 /11) 43세에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다_66 /12) 47세: 개성 유수 이구령과 교유하다_68 /13) 48-50세: 서울에 와서 문도들을 만나고, 나식, 김안국 등과 교유하다_70 /14) 52세 무렵: 화담정사花潭精舍를 짓고 강학을 시작하다_77 /15) 문인들과 만날 때의 일화들_80 /16) 54세: 개성 유수 박우朴祐와 그 아들 박순朴淳, 조욱趙昱과 교유하다_90 /17) 56세(1): 개성 유수 이찬과 교유하다_96 /18) 56세(2): 5월 후릉厚陵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사직하다_98 /19) 56세(3): 건강 악화, 신광한, 심의 등과 교류하다_101 /20) 56세(4): 중종 승하, 복상服喪과 국장國葬을 비판하는 상소문 작성_111 /21) 57세: 역학易學에 관한 글과 시를 쓰다_114 /22)
58세: 인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한 뒤 세상을 떠나다_126 /23) 야사野史에 보이는 서경덕의 이모저모_132 /24) 선조 8년(1575)에 우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를 받다_137 /25) 화곡서원花谷書院이 설립되고, 문묘종사운동이 일어나다_145 /26) 《화담집》 편찬 경위_147
2. 서경덕의 학문: 상수역학 ● 153
1) 상수역학象數易學의 뿌리: 동이족의 역학易學과 선교仙敎_153 /2) 《해동전도록》과 《해동이적》에 오른 서경덕의 삼교회통_157 /3) 송나라 상수역학과 주자학_160 /4) 서경덕의 상수역학_166 /5) 서경덕의 경세관_190
서경덕 연보
제2편 서경덕 문인 및 시우 열전 ● 215
1. 화담 문인 및 시우들 명단 ● 216
1) 《화담집》에 보이는 문인_216 /2) 《화담집》에 보이지 않는 문인(6인)_217 /3) 서경덕 시우詩友_217
2. 《문인록》에 보이는 문인 열전 ● 218
1) 행촌杏村 민순閔純_218 /2) 사암思庵 박순朴淳_221 /3) 초당草堂 허엽許曄_231 /4) 슬한재瑟僩齋 박민헌朴民獻과 박여헌朴黎獻 형제_248 /5)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_257 /6)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_301 /7) 수암守庵 박지화朴枝華_305 /8) 연방蓮坊 이구李球_308 /9) 동강東岡 남언경南彦經_311 /10) 최력崔櫟_314 / 11) 김혜손金惠孫_316 /12) 신역(1521-?)_317 /3) 강문우姜文佑_318 /14) 이소재履素齋 이중호李仲虎_320 /15) 척재惕齋 김근공金謹恭_322 /16) 사재思齋 장가순張可順_323 /17) 윤담수尹聃壽_325 /18) 이재頤齋 차식車軾_327 /19) 마희경馬羲慶_329 /20) 김한걸(金漢傑; ?-1583)_331 /21) 최자양崔自陽_333 /22) 이균李均과 황원손黃元孫_334
3. 《문인록》에 보이지 않는 문인들 ● 335
1)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_335 /2)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_344 /3) 고청孤靑 서기徐起_349 /4) 아계丫溪 고경허高景虛_352 /5) 관물재觀物齋 민기閔箕_354 /6) 운곡雲谷 우남양禹南陽_358
4. 서경덕과 교유한 시우詩友 ● 359
1)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_359 /2) 육봉六峰 박우朴祐_364 /3) 수곡守谷 이찬李澯_366 /4) 대관재大觀齋 심의沈義_367 /5) 보진암葆眞庵 조욱趙昱_377 /6)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_380
나가면서 ● 384
주요 경력 및 저서 ● 389
찾아보기 ● 394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경덕과 비슷한 시기의 개성에는 이런 도술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있었는데, 바로 전우치田禹治가 대표적이다. 그는 학문도 배워서 서울에서 낮은 벼슬을 하기도 했으나, 사화정치에 실망하여 개성으로 낙향하여 도술로 일생을 보냈다. 그의 도술에 관한 일화가 야사에 많이 전해진다. 예를 들면 신광한申光漢의 잔칫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입에 든 밥을 공중에 뿌리니 흰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또 누가 하늘에 있는 천도 복숭아를 따달라고 하니 하늘에 밧줄을 걸고 어린이를 시켜 올라가서 따오게 하여 사람들이 먹었다고도 한다. 또 죽은 뒤에 차식車軾의 집에 와서 책을 빌려 가기도 하여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호란이 일어나기 이전 서경덕이 살았던 16세기 중엽과 그 후학들이 활동했던 16세기 말-17세기 초가 바로 상수역학의 전성기라는 점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주자학에 기운 이황이 있었고, 주자학과 상수역학을 절충한 이이가 있었고, 서경덕과 비슷한 취향의 조식曺植과 그 후학들이 함께 존재하여 서로 논쟁과 경쟁을 벌였다. 당시에는 주자학만이 군림했던 시대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