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88946075559
· 쪽수 : 600쪽
· 출판일 : 2024-12-24
책 소개
목차
제1부 벡티갈
제1장 고대 로마의 사회와 조세 징수
제2장 기원전 111년까지 로마의 공유지 사정과 조세정책의 추이
제3장 로마 공화정기 사적 소유 농지에 대한 과세와 그 귀결‘기원전 111년 농지법’ 19~20행의 분석
제4장 ‘기원전 111년 농지법’에 나오는 비아시·비카니의 기능과 아드트리부티오의 의미
제2부 오르도
제5장 공화정기 로마 귀족과 평민의 관계포룸과 포퓰리즘
제6장 노예제의 이해와 역사교육로마인의 관점을 중심으로
제7장 플루타르코스의 ??코리올라누스??에 나타난 로마 귀족의 권위와 기반
제8장 키케로와 페다리??아티쿠스 서한?? 1.19의 이해를 중심으로
제3부 에퀴테스
제9장 로마 공화정기 기사 신분의 사회이동
제10장 로마 공화정기 방목세 징수와 기사 신분의 역할
제11장 로마의 속주 지배와 징세 청부공화정 후기를 중심으로
제12장 로마 공화정 후기 청부 회사의 조직과 위상
제13장 프린키파투스 시기 재정감독관과 청부업자의 관계로스토프체프의 유형론을 중심으로
제4부 트리부니 아이라리
제14장 로마 공화정기 트리부니 아이라리의 역할과 신분
제15장 ‘속주 아시아 관세법’과 트리부니 아이라리기원전 75~70년 로마시 곡물 공급 문제
제16장 ‘속주 아시아 관세법’에 보이는 비르 보누스와 트리부니 아이라리
제17장 키케로 정치사상의 전환과 ‘보니’의 의미트리부니 아이라리를 중심으로
제18장 트리부니 아이라리와 쿠라토레스트리부스의 구조와 관련하여
저자소개
책속에서
국가 형성의 초기에 오랫동안 정규적인 조세 부과가 없었던 그리스 세계에서는 정규적인 조세 부과는 낯선 것이었다. 고전기의 아테네인들은 직접세를 참주적인 것으로 혐오했고, 가능하면 이를 회피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의 자유는 조세 부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감행한 자들이 이질적인 명칭인 참주(tyrannos, 티라노스)라고 불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관념이 굳어지면서 국가의 운영비는 개인의 재산이나 인신에 전가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상을 낳게 되었고, 이는 당대의 오리엔트 전제 국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된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 이후 자신의 체제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그리스인들은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자유에서 찾았고 그런 자유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하나가 자신들의 조세체제였다고 파악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_ 제1장 고대 로마의 사회와 조세 징수
소유권이라는 관념은 고대 로마의 사회발전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이는 시대를 넘어 근대 서양 사회의 중요한 관념으로 전달되어 수용되었다. 그렇지만 로마인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소유권 개념은 일체의 정규적인 조세 부과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재산에 비례한 기여금이 부과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지닌 것과 유사한 개념의 재산은 없었을까? 로마에서 정규적인 국가 수입의 원천이었던 세목은 ‘벡티갈’이었고, 이는 국가의 재산인 공유지나 공공 시설물의 사용자에게서 징수하는 것이었다. 이를 농지에 국한해 생각한다면, “벡티갈이 부과된 농지(ager vectigalis)”는 사유재산의 하나로 간주되면서 동시에 벡티갈이라는 정규적 과세가 적용되었으므로 본래의 관념인 소유와는 다른 범주를 형성했다.
_ 제3장 로마 공화정기 사적 소유 농지에 대한 과세와 그 귀결
로마의 병사는 자신의 부담으로(de suo) 복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일정한 재산을 가지지 못한 경우 무산자로 분류되어 징병과 징세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두 가지 명칭으로 불리는데 ‘센서스에 이름을 올렸다’는 의미에서 카피테 켄시(capite censi, 말 그대로 ‘머리만 등록되었다’는 뜻임)나 ‘아이를 낳아 국가에 공헌한다’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 프롤레스(proles)가 ‘어린이’, ‘후손’이라는 뜻임. 복수는 프롤레타리(proletarii)]라고 불렸다. 이들은 시민으로 파악되기는 하지만 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특히 콘술 선거 때 투표권의 행사에서 권리는 있으되 행사해 볼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들이 평민의 최하층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_ 제5장 공화정기 로마 귀족과 평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