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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47528566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2-06-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제1부|주물공장에서 경찰청장까지
탄 깨는 아이
너무 멋져 보인 친구들 교복
외교관의 길을 버리고 경찰로
우리 아빠 직업은‘공무원’
경찰의 꽃, 총경이 되다
경찰청 3회 연속 국장
부산경찰청장의 호된 신고식
국제도시 부산은 교통이 중요
조직폭력, 더 이상은 못 참아
밤의 황태자 이경백 구속
조현오는 조폭과 의형제다?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적인 뒷받침
양천경찰서 가혹수사 사건
경찰청장 못될 뻔한 인사청문회
미약한 시작, 창대를 꿈꾸다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은 웃겠습니다
|제2부|치열했던 경찰개혁 이야기
경찰개혁 시동, 위기를 기회로
인사청탁하면 큰일난다
투명한 인사 프로세스를 위하여
영화 <투캅스>, 그 후
사람이 가장 우선이다
그 유명한 성과주의 이야기
서울경찰이 유독 힘들어 한 이유
청장을 보지 말고, 국민을 보라
의경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우리도 이제 법질서 선진국이다
평택의 여름, 쌍용차 파업 77일
3D에서 매력 있는 직업으로
5분을 위한 5시간의 기다림
보이지 않는 자산, 경찰문화 개선
|제3부|경찰이 가야 할 또 다른 길
학교폭력, 이제는 멈춰야 할 때
사회갈등 조정과 경찰의 역할
경찰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해
57년만의 형소법 제196조 개정
경찰과 검찰, 그 기원과 역사
수사권 조정이 밥그릇 싸움이라고?
형사사법의 선진화를 위해
에필로그 - “조현오, 오해와 진실”
리뷰
책속에서
우리 형편에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주물공장에 취직해 공원으로 일하겠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막노동을 했다. 그때 내 나이 13살 때였다. 중학교에 진학해 한참 공부할 나이였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자신은 배우지 못했어도 자식만큼은 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다. 나의 부모님도 그랬다. 못 배운 것이 한이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학교 대신 공장에 가겠다는 말에 그저 눈물만 흘리셨다. 아버지는 담배만 뻑뻑 피우셨다. 부모님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다닌 주물공장은 ‘스뎅 식기’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시절엔 스테인리스를 일본식으로 ‘스뎅’이라 불렀다. 스테인리스 식기는 일본말로 ‘기리빠시’라는 쇳조각을 녹여 만든 쇳물을 부어 주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장은 하루 종일 석탄 매연으로 매캐한 데다 위험한 곳이었다. 한번은 강판을 자르고 남은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잘못 밟아 오른발을 관통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어 담배꽁초를 상처 구멍에 넣어 지혈을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치료법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석탄을 깨고 망치질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나를 ‘탄 깨는 아이’라 불렀다. 하루에 13∼14시간을 일했다. 13살 어린 소년에게 그 일은 고달픈 중노동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석탄을 깨고 집으로 돌아오면 코에서 새카만 석탄가루가 코피에 섞여 흘러내렸다. 그렇게 일해서 일당 120원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80원을 받았으나 주인아저씨는 내가 일을 잘한다며 40원을 더 준 것이었다. 몇 개월 지난 뒤에는 130원으로 올려주었다. 그렇게 2년을 스뎅 식기를 만드는 주물공장에서 보냈다.
- 본문 28쪽, <탄 깨는 아이> 중에서
서울청 형사과 수사팀은 우선 이경백이 실업주임을 증명한 이후 관련 비호세력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경백은 그간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한편 회계사, 세무사 등을 고용해 업소 수익금의 추적을 어렵게 했다. 또 검사 출신 변호사를 집사처럼 활용하며 법망을 빠져나갔다. 2005년 사설카지노 개장 혐의를 받았을 때도 검찰에 바지사장을 보내 대신 처벌받게 한 일이 있었다.
이후 3개월의 강도 높은 수사를 전개한 경찰수사팀은 73개의 계좌추적, 장부수사 등으로 이경백이 13개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실제 업주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불법 유흥업소를 통해 성매매, 유사성행위 알선으로 5년간 약 3,600억 원의 소득을 얻고, 42억 6천만 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까지 밝혀냈다.
이경백은 서울경찰청에서 3회 소환조사를 받았다.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으나 2010년 6월 24일 법원은 이경백에 대해 성매매 알선과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럼에도 이경백은 “경찰이 아무리 영장을 신청해도 검찰이 재지휘하면 소용없는 것 아니냐”며 수사팀을 조롱했다. 또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 4명이 참여한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자신은 절대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심지어 경찰수사팀을 음해하는 허위 내용의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하며 수사 방해를 시도했다.
그는 검찰로 송치된 이후에도 비호세력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다가 2010년 9월 7일 금보석(1억 5천만 원)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12월 30일 공판에 불출석해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경찰은 다시 끈질긴 노
력으로 2011년 7월 7일 체포해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11월 28일, 제1심에서 징역 3년 6월과 벌금 30억 원을 선고 받았다.
그 다음 수사팀은 이경백의 비호세력을 찾아내기 위해 팔을 걷었다. 우선 통화 내역을 조사해 이경백과 통화한 경찰관 69명을 밝혀냈다. 이경백이 장기간 13개의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실업주로 입건되지 않은 데는 경찰관 등 단속 공무원과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할 터였다. 69명 중에는 이경백과 1년간 400회 이상 통화를 한 경찰관도 있었다. 자기 부모와 그렇게 자주 통화를 했으면 효자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69명 중 다른 지방청에 근무하는 6명을 제외하고 63명에 대한 감찰조사를 벌였다. 통화 횟수, 관련자와의 관계를 고려해 6명을 파면·해임하는 등 총 40명을 징계했다.
- 본문 70~72쪽, <밤의 황태자 이경백 구속> 중에서
2011년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경찰에 수사주체성이 부여되었다. 10월 21일 경찰의 날에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치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경찰의 수사주체성을 인정해주었다. 경찰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자긍심과 책임감 속에 획기적으로 달라지자는 분위기가 고조되어왔다. 형소법 개정안은 국회 사개특위에서 촉발되었고, 검찰개혁 안건 중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신설 건이 검찰 반발에 부딪혀 불발되면서 그나마 경찰에 힘을 실어주어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로 형소법에 경찰수사 개시, 진행권을 명문화해 주었다.
그런데 하위 법령인 대통령령이 그나마 독자적으로 진행했던 경찰 내사마저도 검사의 광범위한 개입과 통제를 허용하고, 똑같은 국가수사기관인 검찰의 내사 영역만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방치하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다. 내사 문제는 분명히 이미 정리된 사안이었다.
6월 20일 청와대, 정부, 관계기관 8인 회의 결과 ‘모든 수사’에서 내사는 제외된다고 합의된 사안이었다. 입건 전 단계는 내사라고 내가 설명했고,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2011년 6월 30일 형소법 개정안 국회통과에 즈음해 개최된 국회법사위, 행안위 등 각종 위원회에서도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여러 국회의원들이 ‘경찰 내사는 검사의 지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한 바 있다. 이는 국회 속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형소법 개정의 핵심은 대통령께서 경찰의 날에 말씀했던 ‘수사개시, 진행권’, 즉 경찰의 수사주체성 부여다. 엄연히 수사개시권이 명문화되어 법적 요건에 해당하면 당연히 수사를 개시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에는 사안에 따라 검사에게 수사 개시 여부를 지휘 받도록 하는 모순된 규정이 신설된 것이다.
또한 수사중단 송치지휘 명령을 통해 검사가 일방적으로 경찰수사를 중단시키고 검찰이 사건을 가져갈 수도 있게 해놓았다. 사건 가로채기를 법령화한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대통령령을 제정하면서 6월 20일 합의정신과 검찰권 견제라는 형소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경찰을 끌어다 현실대로 법제화하겠다고 하고는, 오히려 더 묶어놓은 꼴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모습인가? 전체 사건의 97%를 실제로 처리하고 있는 경찰에게 검찰과의 협력대등 관계와 수사권을 명시해주는 것이 현실의 법제화 아닌가?
2012년 경찰의 모습이 1954년 형소법 제정 당시와 동일한지 비교할 필요도 있다. 인권문제 때문에 현행 검사지휘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에 접수되는 인구 1천명 당 진정건수를 보면 검찰이 경찰의 2배다. 경찰은 지역경찰과 형사활동, 집회시위 현장 등 얼마나 많은 현장을 누비고 있는가? 검찰은 수사업무만 하는 데도 경찰보다 인권진정이 2배나 많다. 검찰과 수평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부패비리 문제를 본다면, 2011년 국민권익위 청렴도 평가(전문가 집단)에서 경찰은 5위, 검찰은 11위를 차지했다. 수사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금품수수 등 통계에서도, 경찰은 지난 5년 대비
믿기 어려운 감소 성과를 내고 있다. 2011년 정부기관 부패시책 평가 역시 39개 중앙행정 기관 중 경찰은 11위, 검찰은 29위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인데 누가 누구를 통제한다는 말인가? 우리 경찰도 이제 이만큼 성장했으니 그에 맞는 옷을 입혀달라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수사구조를 가진 나라가 어디 있는가? 세계 10대 무역국가, OECD 회원국, 원조 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발전한 21세기 대한민국에 식민지 시대를 갓 벗어나 이념의 혼란기에서 태동한 수사구조가 타당한가? 앞으로도 계속 이 제도를 밀고 가도 좋은가?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 본문 298~300쪽, <형사사법의 선진화를 위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