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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50913878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0-02-28
책 소개
목차
제1장 책임을 감당하라
첫 번째 위험 책임을 회피하다
위기상황1: 책임지기 싫어, 절대로 / 아담, 죄인을 거부한 첫 번째 남자 / 죄에 대한 두 가지 태도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당신 아니면 내 이야기
제2장 신뢰하고 신뢰하라
두 번째 위험 내 방법을 고집하다
위기상황2: 냅둬유! 좋기만 하구먼유 / 아브라함, 나름의 방법을 찾고자 애쓴 첫 번째 남자 / 내방법의 위험 / 내 방법이 아닌 다른 선택은? / 신뢰의 시간표에는 기한이 없다
제3장 올바른 순서를 세우라
세 번째 위험 잘못된 순서로 살다
위기상황3: 차를 좀 조심해서 다루라니깐, 쫌! / 야곱, 상식을 내팽개친 첫 번째 남자 / 더이상 나쁠 수 없는 순서 / 남자들의 우선순위 / 우선순위만큼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 우선순위의 본보기
제4장 주고받음을 자각하라
네 번째 위험 개인주의에 빠지다
위기상황4: 이렇게 될 줄 몰랐다니깐요, 난! / 아간, 묘비명을 가진 첫 번째 남자 / 한 사람의 행동이 낳은 결과 / 개인의 죄는 그 개인을 넘는다 / 공동체의 성경적 개념 / 행위의 결과를 인정하라
제5장 순결을 결단하라
다섯 번째 위험 욕망의 늪에 빠지다
위기상황5: 19금보담 훨씬 재밌다니까요, 글쎄! / 삼손,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첫 번째 남자 / 결단으로 시작하라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 욕망이 육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제6장 지헤롭게 말하라
여섯 번째 위험 차갑고 둔감한 언어를 사용하다
위기상황6: 아빠를 바라봐, 사랑한다 얘야! / 엘가나, 사랑의 말에 미숙했던 첫 번째 남자 / 사려 깊게 말하라 / 적절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하라 / 성과와 칭찬을 구분하라
제7장 가족과 함께하라
일곱 번째 위험 부재의 위험을 간과하다
위기상황7: 시간은 돈인데 어째서 돈이 안 벌리지? / 사무엘, ‘부재중인 아버지’가 뭔지 보여준 첫 번째 남자 / 대안은 없다 / 분주함을 앞지르기 / 하늘의 아버지를 반영하기
제8장 온전히 순종하라
여덟 번째 위험 100% 순종할 수 없다
위기상황8: 그까이꺼, 대~충 대충! / 사울, 하나님마저 후회케 한 첫 번째 남자 / 타협 없는 삶 / 태만과 범죄 / 순종과 율법주의
제9장 분노를 다스리라
아홉 번째 위험 분노가 해결되지 않다
위기상황9: 으아! 뚜껑 열린다. 뚜꼉 열려! / 다윗, 마음의 감옥에 갇힌 첫 번째 남자 / 의로운 분노 / 분노를 잘못 다루는 다섯 가지 방법 / 용서를 통해 분노를 해결하기
제10장 만족을 선택하라
열 번째 위험 결코 만족하지 못하다
위기상황10: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당께 / 솔로몬, 결코 만족을 몰랐던 첫 번째 남자 / 만족을 선택하는 법 / 하나님의 만족
제11장 배우는 능력을 갖추라
열한 번째 위험 다른 사람에게 배우고 싶지 않다
위기상황11: 박사 학위 받은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 / 솔로몬의 아들, 배움을 등한시한 첫번째 남자 / 배우는 능력은 마음의 문제다 / 지침을 구하고 들은 일에 서툴다 / 지혜는 전염성이 강하다
제12장 올바른 동기를 세우라
열두 번째 위험 숨겨진 동기를 숨기다
위기상황12: 무슨 이유가 있다고 그러세요, 글쎄 / 요하스, 하나님의 돌보심을 잃은 첫 번째 남자 / 공개적인 행위 뒤에 숨은 잘못된 동기 / 동기를 순수하게 만드는 법
책속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았고 불임이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는 산모가 될 가능성이 전무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약속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나 누구든 아브라함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알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데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단 말인가? 나름의 방책을 만들기 위해 아브라함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다. 사라의 애굽 종 하갈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만다. 여하튼 하나님은 후손이 그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지, 사라의 자식이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았고, 아브라함도 여하튼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후에 하나님은 약속된 자식이 사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밝히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과연 이같은 기적을 일으키실 것인가 여전히 의아해하며, 심지어 이스마엘을 가리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창세기 17장 18절)라고 하나님께 말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더 알았어야 했다.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비록 나이 많고 불임이지만 사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믿음이 부족했던 아브라함에게 이런 일은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세 번째에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약속을 언급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즉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녀에게 복을 주어 많은 나라들의 어머니가 되게 해 나라의 왕들이 그녀에게서 나오게 하겠다”(창세기 17장 16절)
이번에 하나님은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셨다.
“네 아내 사라가 네 아들을 낳을 것이고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고 그 뒤에 올 자손을 위해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이다.”(창세기 17장 19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함께 아이를 낳는다. 약속의 아들 이삭이 비로소 등장하는 순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유리한 방식과 시간 틀 속에서 인도하지 않음으로 인도하셨다. 대개의 경우처럼 ‘보기에 적당하게’ 아브라함 역시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현명하게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하나님께서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대 롯을 데리고 갔고 사라에게 충실해야 할 때 하갈ㄹ을 취했던 것은 그 나름대로는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겠는가!
남자들은 일상적으로 말을 걸러내지 못한다. 가족에게 특히 그렇다. 생각없이 툭 내뱉는 말을 제외하면 대개는 입을 다물고 있기 일쑤인데도 그렇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우리의 도구를 숨기려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자들에게는 두 가지 도구가 있는데 비판과 침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특별히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마련해 둔 도구라 할 수 있다.
좀처럼 안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감정을 나누지도 않는 것이 보통의 남자들이다. 매일 밤마다 딸들을 안아서 침대에 데려다 줄 때 나는 똑같은 말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빠를 바라봐. 사랑한다, 얘야.”
열두 살 소년이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머뭇거리듯 아버지들 역시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려다가도 주저하기 일쑤다. 막상 해보려고 하면 너무나 불편해하고, 거북해한다. 오히려 어쩌다 건넨 한 마디 말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화나게 만들고, 그 때문에 아이들과의 사이가 틀어진다. 아버지들은 대개가 아이들을 칭찬하거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남자라면 가족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것을 배우거나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입을 다물어야지, 도구를 꺼낼 목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가족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언어기술을 습득할 때까지는 스스로가 고되게 훈련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이마에 ‘주의 요망’이라고 붙여 놓으신 것처럼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을 대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백성들이 자신들을 이끌 ‘왕’을 요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은 사사로서 민족을 각월하게 이끌었지만 은퇴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걷지 않았다. 공금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부패했으며, 호감가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정의의 저울을 조작했다. 우리는 사악한 사람들이 자신을 이끌지 않길 원했던 이스라엘장로들에게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악한 본성을 가지게 된 원인이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짐작할 수는 있다.
“사무엘은 평생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모든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사무엘상 7장 15~17절) 사무엘이 도시를 다스렸다는 말은 그 도시의 1인 정부로서 시장, 시의회, 법원, 치안까지 맡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결고 적은 업무가 아니다. 매일 약 80킬로미터의 거리를 순회하며 도시들들 방문했다. 본문을 보면 그는 해마다 한 번만 집에 돌아왔고, 거기서도 라마를 다스렸다. 이는 그가 매년 9개월 이상은 집을 떠나있었다는 의미다.
사무엘은 부재중인 아버지였다. 성경은 사무엘이 집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들이 반항을 했다고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은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사무엘의 아들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원망했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지 않으셨다면 그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집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하나님의 일로 바쁜 사무엘은 집을 계속 비웠고, 가족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는 대략 30년갼 사사로서 도시들을 순회했는데, 아마도 아들들의 성장기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아들들은 악했으며, 결국 이스라엘백성들은 사무엘의 아들들을 사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선택했기에 고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