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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50996468
· 쪽수 : 584쪽
책 소개
목차
[재위 15년]
들어가는 말
일러두기
태종 15년 을미년 1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2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3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4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5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6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7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8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9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10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11월 • 원문
태종 15년 을미년 12월 • 원문
저자소개
책속에서
“근래에 세자를 보면 사사로이 간사한 소인들[?小]을 가까이하던데, 경(卿) 등은 직책이 보도(輔導)에 있는데 어찌 간언해서 말리지[諫止] 못했는가? 사우(師友-임금의 스승과 붕우)를 설치한 것은 바로 덕성(德性)을 함양해서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도리를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이 네 가지 가운데 과연 하나라도 있는가? 전(傳)에 이르기를 ‘다움이 재주보다 나은 것을 군자(君子)라 이르고, 재주가 다움보다 나은 것을 소인(小人)이라 이른다[德勝才謂之才勝德謂之小人]’라고 했다. 세자는 타고난 자질이 괴위(魁偉-남달리 재주가 크고 뛰어남)해 단순히 나와는 같지 않으니 불미(不美)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학문 함양의 경우에는 도무지[都] 아무런 공효가 없으니, 경 등이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서연(書筵)의 소유(小儒-잔챙이 유학자) 등이 생각하기를 ‘장차 임금이 될 것이다’라고 해 외축(畏縮)돼 간언하지 못하고, 대간(臺諫) 또한 그렇다. 경 등은 이미 재상이 됐건만 무엇을 꺼려 감히 바른길로 보필해 인도하지 못하는가?” _ (태종 15년 을미년 1월 정묘일 기사)
세자가 아뢰어 말했다. “지난[去] 계사년(癸巳年-1413년) 4월에 중궁(中宮)이 편찮아서[違豫] 신(臣)과 효령·충녕이 궐내(闕內)에 있었는데, 무회와 무휼도 문안을 왔습니다. 두 아우가 약(藥)을 받들고 안으로 들어가서 신과 두 민씨만이 있게 됐는데, 무회의 말이 가문(家門)이 패망하고 두 형이 득죄(得罪)한 연유에 미치기에 신이 책망하기를 ‘민씨의 가문은 교만 방자해 불법(不法)함이 다른 성(姓)에 비할 바가 아니니, 화(禍)를 입음이 마땅하다’고 했더니 무회가 신에게 이르기를 ‘세자는 우리 가문에서 자라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므로 신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는데 무휼이 신을 따라와 말하기를 ‘무회가 실언(失言)을 했으니 이 말을 드러내지 마십시오’라고 하기에 신이 오래도록 여쭙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전(改悛)할 마음이 없고 또 원망하는 말이 있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_ (태종 15년 을미년 6월 신미일 기사)
딸 하나가 있는데 나이는 아직 어리나 국가에 일이 없는 때 마땅한 사람[適人]에게 보내고자 해서, 대언(代言) 등에게 명해 4~5품 이하 사부(士夫)의 집 아들을 널리 구해 부마(駙馬)를 삼으려고 하니, 어제 여러 대언이 세 사람을 아뢰었다. 그중에서 의정(議政) 남재(南在)의 손자가 명격(命格)에 그런대로 부합하기에 이제 이미 정했다. 부마가 되는 자는 빈천(貧賤)을 걱정할 것이 없다. 문벌(門閥) 자손의 경우에는 교만하고 부귀한 데 습관이 돼 패망하지 않는 것이 적다. 그러므로 내가 특별히 관직이 낮은 족속(族屬) 가운데 과부의 아들과 같은 자를 취해 이를 삼으려는 것이다. _ (태종 15년 을미년 11월 기해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