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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공자/논어
· ISBN : 9791190413657
· 쪽수 : 1344쪽
· 출판일 : 2024-02-14
책 소개
목차
서문
1. 學而(학이)
2. 爲政(위정)
3. 八佾(팔일)
4. 里仁(이인)
5. 公冶長(공야장)
6. 雍也(옹야)
7. 述而(술이)
8. 泰伯(태백)
9. 子罕(자한)
10. 鄕黨(향당)
11. 先進(선진)
12. 顔淵(안연)
13. 子路(자로)
14. 憲問(헌문)
15. 衛靈公(위령공)
16. 季氏(계씨)
17. 陽貨(양화)
18. 微子(미자)
19. 子張(자장)
20. 堯曰(요왈)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논어(論語)라는 명칭과 관련해 반고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견해가 “논(論)과 말[語]을 모은 것”이라서 논어(論語)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아무 뜻도 없는 동어 반복일 뿐이다. 심지어 “공자 말을 논하여 정리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 제자들 말은 왜 실려 있는가? 이런 주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논어’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논어』 전체를 유기적으로 해석한 다음이라야 가능하지만 일단 실마리만 던져본다. 요왈(堯曰)편, 맨 마지막 구절을 보자.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일을 행하기 전에 말만 듣고서도 그 사람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알려면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을 논해[論語] 말을 잘 알아들어[知言] 사람을 잘 알아보자[知人]”는 것이 『논어』라는 책의 결론이자 목적이다. 한마디로, ‘논어(論語)’라는 말은 논어지인(論語知人), 즉 “말을 논해 사람을 잘 알아보자”라는 뜻이다.
학이편 첫 세 구절은 바둑 9단 고수가 대국(對局)에서 둔 첫 세 수와 같다. 그것을 통해 전체 대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사실상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대국 이름은 공덕(公德) 함양이다. 『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왕학(帝王學) 혹은 리더십 기르기다. 물론 곧은 신하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팔로워십 기르기도 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도대체 『논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미지의 편찬자는 왜 이 세 구절을 맨 앞에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 풀이처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식으로 듬성듬성 오역투성이 번역을 따라가서는 결코 이 질문을 돌파할 수 없다.
공자는 ‘학이 3’에서 인무야(仁無也) 혹은 불인야(不仁也)라고 하지 않았다. 즉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들 중에 ‘어진 사람은 없다’거나 그런 사람들은 ‘어질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인야(非仁也), 즉 ‘어진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드물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 점을 놓친 기존 번역들은 하나같이 “교언영색하는 자는 어질지 않다”라고 풀어놓고 있다. 초점을 빗나간 풀이다. 물론 그 책임은 기본적으로 주희에게 있다.
그는 이 구절을 풀이하며 “공자가 말씀이 박절하지 않아 오로지 드물다고만 말했을 뿐 (실제로는) 절대 없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주희는 선(鮮)의 의미를 무시하고 ‘절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잘못은 너무도 크다. 지금도 우리는 흔히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아부나 아첨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데, 이 맥락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교언’은 말을 정교하게 잘한다는 중립적인 뜻일 뿐, 말을 교묘하게 한다는 게 아니다. ‘영색’ 또한 아름답고 좋은 얼굴빛이라는 뜻이다. 교언영색을 직역하면 ‘정교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빛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그 자체로 나쁜 의미겠는가. 결국 교언영색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간략한 표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